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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Nov 10. 2021

중국 교환학생과 영국 석사는 어떻게 달랐나

20대 초반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약 1년 반 동안 저장성 진화에 머물렀다. 그리고 30대 초반 영국에 석사 유학을 떠나며 약 1년 동안 북잉글랜드 뉴캐슬 어폰 타인에서 지냈다. 어렸을 때에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부러워서 외국 살이를 줄기차게 노래 부르다가 결국 짧게나마 외국 맛보기를 두 번 해봤다.


이 두 경험은 조건이 극적으로 다르다. 한쪽은 20대 초반, 학생이자 학사 공부를 할 때였고, 다른 한쪽은 30대 초반, 직장인 신분에서 석사 공부를 시작했으니 모든 조건이 반대라고 볼 수도 있다. 거기에 우리의 삶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까지 더해지니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일 수 있지만 경험을 공유해보는 차원으로 써보려 한다.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음식이다. 중국에서도 초반에 음식이 잘 맞지 않아 고생했지만 다른 한국 학생들의 추천과 도움으로 입에 맞는 음식들을 빠르게 섭렵해갔다. 유학생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음식들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마라탕, 마라샹궈, 가지 튀김, 탕수육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부추 계란 볶음, 토마토 계란 볶음, 양배추 볶음, 감자 샐러드, 회과육 등 밥과 함께 먹기 안성맞춤인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밥심을 믿는 나에게 밥과 함께 먹는 요리는 몸과 마음을 허기질 새 없이 든든하게 채워 주는 존재였다. 중국에서 지내면서 한식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던 건 저렴하고 푸짐한 중식이 있었고 무엇보다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이미 유명한 나라이다. “대표적인 영국 음식이 뭐가 있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물가가 비싸서 식사를 하는데 기본 15파운드(우리나라 돈으로 22,000원 정도)는 들었다. 그마저도 맛과 질이 좋다고 하기 어려운 음식들이 많아서 한국 사람들과 ‘이 사람들 한국에서 이렇게 장사하면 가게 다 망할 텐데…’라는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를 시작했고 난생처음으로 삼시세끼 직접 밥을 만들어 먹는 삶을 1년 동안 살았다. 자취 경력 몇 년이라는 말은 곧 요리, 청소 등의 생존 능력을 의미하는데, 한국에서도 자취를 6년 동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생존 스킬이 +1 된 것 같다.



두 번째로 차이점은 교우 관계였다. 여기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더해진다. 교환학생 시절에는 기숙사에 살면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질 기회가 많았다. 학사 수업이라 상대적으로 부담도 덜했고 대부분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이라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굳이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기숙사에서 같이 요리해 먹고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영국에 석사를 오니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학우들과 만날 기회가 없고, 동아리 활동이나 기숙사 내의 활동도 제한적이라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컸다. 게다가 회사를 다니다가 석사를 하러 온 사람들보다는 대부분 학사를 졸업하고 바로 석사를 진학한 사람이 거의 95% 이상이어서 수업에서 이야기를 할 때나 밖에서 만났을 때에도 약간의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중국과 영국의 비교라기보단 아시아와 유럽이기 때문에 달랐던 경험 중 하나는 인종차별이었다. 중국에 있을 때에는 육안으로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뚜렷하게 구분이 되지 않아 외국인이라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거나 불편한 시선을 받을 일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인이라고 말했을 때 신기해하고 잘해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물론 직장을 다녔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중국에서 일했던 친구들이 말하길 같이 일을 하는 순간 외국인이라서 받았던 메리트는 사라지고 중국어를 원어민처럼 하지 못해서 비난받는 일들도 많았다고 한다.


영국에서의 나는 누가 봐도 유색인종 소수자였다. 이를 빌미로 불쾌하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 캣 콜링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관심도 없었고, 언제나 나는 잠정적으로 확정된 중국인이었다. 영국에 와서야 비로소 소수 집단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늘 기분 상할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채로 길을 걸어야 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중국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더 즐겁고 유쾌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가장 활발하게 사람들과 교류하던 시기인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외국에서 또래들과 살게 되었기에 인상 깊은 일들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깨달은 가장 큰 가치는 여유로운 삶, 개인에 대한 존중이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느긋했지만 이는 내가 교환학생을 온 외부인이었기 때문이지 중국 학생들의 삶은 한국 못지않게 치열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위로 올라가는 것뿐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영국에는 다양한 삶이 있었고, 그 속에 여유가 있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돌아와서는 자기 계발을 하며 자기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달랐다. 그들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가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높은 임금과 사회적 기반이 있다. 치열한 삶을 살다 보니 개인 하나하나를 존중하기보다는 단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와 달리, 개인이 개인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었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라는 말을 들으며,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경험해보지 못해서 힘주어 반박하지 못했던 말들을 영국 생활 이후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중국 생활처럼 활기 넘치고 추억이 많지는 않지만 영국 석사는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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