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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Apr 22. 2021

일상 속 인종차별: "야, 에그누들!"

거리에서 마주하는 아시안 혐오

요즘 아시안 혐오에서 비롯된 범죄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백인 남성이 한국계 포함 아시아계 여성 6명과 백인 2명을 살해한 총기 난사 사건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최근 아시아계 20대 여성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염산 테러를 당해 얼굴과 목구멍까지 화상을 입는 사건도 있었다(링크).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 참석을 위해 출국을 앞둔 배우 윤여정 씨도 최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들이 경호원 고용을 제안할 정도로 아시안 혐오 범죄를 우려하고 있음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링크).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90767.html)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영국은 괜찮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런던 같은 대도시는 워낙 유동인구가 많아서 사건사고도 많은 듯한데 여기 뉴캐슬은 잠잠하고 괜찮은 것 같다고 대답하던 중에 중국인 친구로부터 유학생 한 명이 기숙사 근처에서 10대 백인 청소년들에게 돌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외에도 몇몇 유사 사례들이 들려왔고 아시안 혐오 관련 무슨 일이 생기든 무조건 학교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라는 학교 측의 메일을 받고 나서야 실감했다. 이 곳에서도 크고 작은 아시안 혐오가 일어나고 있었다.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었다. ‘깊이 생각하고 붙들고 있어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고 애써 무시했던 인종 차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할로윈을 앞두고 집에 돌아가던 길, 20대로 추정되는 술에 흥건히 취한 백인 남성들이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야 거기. 에그 누들! 꺼져!”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럼 너는 블랙 푸딩(영국 사람들이 아침에 먹는 영국식 순대)이냐?”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울컥하면서 그와 동시에 나는 에그 누들을 즐겨 먹는 중국인이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국수 중에서는 소면을 즐겨 먹는 한국인이라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에그 누들(왼쪽)도 맛있지만 소면(중앙, 오른쪽)을 자주 먹는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머리에 스친 많은 생각들은 입 밖으로 어떤 소리를 내는 데에 아무런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거리에 사람은 많았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이 누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안하무인이 된 저 만취한 사람들이 더 위협적인 공격을 가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들에게 철저하게 시선을 두지 않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어 앞을 바라보며, 그저 엄청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그 장소를 지나쳤다.



영국에 온 아시아 사람들은, 특히 중국인들은 돈이 많다는 생각 때문인지 타인 강 주변 산책로를 지날 때면 유독 아시아 여성들에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다짜고짜 다가와서 손을 내밀며 돈 좀 있느냐고, 배고프다고 돈을 달라고 말한다.

현지 사람들에게는 돈을 달라고 다가가지 않는 것을 보면 아시안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여러 명이 같이 있을 때는 우리도 돈 없다고 우리한테 그러지 말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받아치기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상황을 피하는 게 안전하다.



이에 비해서는 덜 위협적이지만 더 자주 겪는 인종 차별도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니하오" "칭총칭총" 하며 캣콜링을 하는 남자들을 거리에서 마주치곤 한다.

그들은 영국 여성들에게는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체구도 작고 약해 보이며, 이방인이라서 신고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못할 확률이 높은 아시아 여성들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계급적 우월감을 느끼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분명 잘못은 그 사람들이 하고 있는데, 잘못된 행동이라고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아서 아시아 여성에게 그래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 우리의 잘못인 것만 같다.


‘우리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늘 생각은 하지만 강하게 반응하는 순간 혹시 더 험한 일을 당하진 않을까 두려워서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저 술에 취한 이들의 술주정이거나 덜 배운 남성들의 저급한 장난일 뿐이니 너무 마음에 두고 상처 받지 말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아시안 혐오를 단지 어떤 개인의 무지함, 무개념함으로 축소시키는 오류를 더하여 지금의 사태까지 온건 아닐까 싶다.


인종 차별을 포함한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문제는 가볍게 다뤄지기 쉽다. 본인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에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차별 문제를 단순히 행동을 한 사람들이 무지하고 인격이 덜 형성된 사람이라고 치부하고는 한다.

자기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 내 그 누구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묵인해왔고, 이로 인해 가해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거리낌 없이 차별과 혐오를 드러낸 것이다.


차별의 대상이든 그 차별과 무관한 위치에 있든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 되어야겠다는 용기와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개인이 모여 서로가 또 다른 혐오와 차별의 주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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