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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Jun 16. 2021

안녕은 Hello 아니고 How are you까지

영국의 인사와 small talk의 중요성

엄마들은 보통 자녀의 나이에 맞게 동네 친구들을 사귄다. 엄마와 친한 동네 아주머니 분들은 모두 오빠나 나와 동갑인 자녀들이 있었다. 엄친딸, 엄친아들이 쉽사리 서로 친해지지 못하고 소식만 들으며 비교당하는 일의 시작은 늘 이렇게 친목, 좋은 의도였던 것이다.


또래 자녀가 없지만 엄마와 친한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그분을 남몰래 동경했다. 그 마음은 못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과 팬심이었는데, 넉살 좋고 개그감 넘치는 마당발이셨던 그분은 나에게 없는 3가지를 모두 갖추셨다. 안 친한 사람과도 쉽사리 이야기를 시작하셨고,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모두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저력을 갖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면 늘 큰 소리로 인사를 하셨다.

“어머~ 레이나야 안녕? 잘 지내? 요즘 뭐해? 어디 가니?”


지금보다 더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것조차 부끄럽고 어색해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아주머니니까 제대로 인사하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에 늘 용기 내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아.. 안녕하세요! 네 저 지금 운동 가는데 어디 가ㅅ....?"

질문을 던지고 바삐 길을 떠나시는 그분의 뒤통수에 대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나는 어디에 가고 있는데 어디 가시.... 아 안녕히 가시라고 공허하게 읊조리고는 했다.


몇 번 상황이 반복되고 적응이 되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았다. 스쳐 지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최대한 내가 말할 수 있는 만큼 말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 고개를 돌려 갈 길을 갔다.


영국에 와서야 아주머니께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곳에서는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마트에서 계산을 할 때에도 늘 “Hello, how are you doing?”이라고 서로 인사하고 질문을 한다. 심지어 셰어하우스 안에서 플랫 메이트들끼리 마주칠 때조차 서로 인사 겸 질문을 하곤 했지만 대답은 듣지 않았다. “Good. How are you?”라고 기계적으로 되묻지만 사실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빈말, 겉치레 말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데 왜 저렇게 매번 인사를 해야 하는지 왜 궁금하지도 않은데 질문을 하는 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였고, 만났는데 질문을 하지 않고 small talk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모양이었다. 처음 이 셰어하우스에 왔을 때 Hello만 하고 안부를 묻지 않는, “How are you?”를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메이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Hello만 하는 건 인사가 아니었다. 미소를 짓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Hello, how are you? 는 한 단어였던 것이다.


조금 더 실용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면 안녕은 Hello가 아니라 Hello how are you doing이라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국말로 인사를 “안녕하세요?”라고 배웠는데, “안녕하” 까지만 말하면 이상하듯 인사할 때 Hello만 말하는 건 부족하다. How are you doing? 은 질문이 아니다. 그냥 안녕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매일 아침 주방에서 플랫 메이트들을 만날 때면 어색하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보는 사람들끼리 안녕, 잘 지내니? 뭐 만들어? 요즘 일은 어때? 등등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여간 간지럽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약간의 발전은 있다. 혼자가 심심하고 외로운 날이면 How are you?라는 인사에 기대어 대화를 하기도 한다. 평소라면 그냥 “Fine.”이나 “Not bad not bad.”로 답하고 넘어갔을 인사에 굳이 구구절절 일상을 붙여 말해본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도 쓸모는 없지만 그래도 소소한 정보가 쌓여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만드는 기분을 느낀다.


미국 사람들이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싱긋 웃으며 Hi를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친절하고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라, 신대륙에 정착하던 시절 총을 가슴에 품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목숨과 재산을 직접 지켜야 했기 때문에 미소 지으며 건네는 “안녕”이 나는 너를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알리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How are you doing? 도 그런 이유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기원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다.

어색하지만 소소한 인사 나눔에 더 편안해져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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