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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Jun 09. 2021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코로나 때문에 잊었던 사는 재미

4월 중순, 락다운이 해제되었지만 지난 한 달 반 동안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냈다. 집에서 삼시 세끼를 해 먹고 외출은 장보기 아니면 산책이 전부였다. 이제 레스토랑, 카페의 실내 좌석도 이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가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제한 단계가 낮아지면 감염자 수가 수직 상승하는 현상은 만국 공통으로 끊임없이 일어났기에 정책에 상관없이 최대한 조심하자고 남자친구와 의견을 맞췄다.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비와 먼 삶을 살았다. 유학생인 나와 코로나로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부업을 하고 있는 그는 별 아쉬움 없이 이 삶을 받아들였다. 회사에서 시달리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굳이 돈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몸과 마음이 안정될 수 있었다. 매일 음식을 해 먹고 커피도 직접 내려 먹는 일상에 적응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하는 것보다, "여기가 진짜 영국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펍에 가서 리듬에 몸을 살짝 흔들어 주며 맥주를 마시는 것보다, 남자친구와 함께 하는 소소한 하루가 더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믿었다.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분지족의 삶으로 가는 건가 하던 찰나에, 버블티 한잔이 내 뒤통수를 탁- 하고 쳤다.


"아니 아니. 잊지 마. 너도 인간이라는 걸."



그날은 오랜만에 기숙사에 가서 필요한 짐을 챙기고 겸사겸사 남자친구에게 숙소를 구경시켜 주기로 한 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이 기숙사에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그는 건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밖에서 비 맞고 있어야 하는 그가 걱정되어 최대한 빨리 나가려고 좁은 방에서 부랴부랴 짐을 챙기곤 했다. 자주 가는 기숙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곳에서 사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화창한 날씨에 오랜만에 외출을 하니 신이 났다. 허기를 달랠 겸 마실 것을 찾다가 이전부터 궁금했던 yifang이라는 버블티 가게가 눈에 띄었다. 타이완에서 유명한 버블티 전문점이라 처음 문 열던 날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중국 유학생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힙스터도 아니고 유명하다고 다 해보는 적극적 소비자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먹을 거 왜 유명한지 맛이나 보자 싶어서 Yifang에서 브라운 슈가 펄 버블티를 주문했다.


따뜻하고 달달한 버블티를 들고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 ‘여기는 공차처럼 빨대를 안 꽂아주는구나. 껍질을 잘 못 뚫으면 어떡하지?’ 하며 커다란 빨대를 컵에 푹 꽂고 버블티를 쭈욱 들이키고는 둘 다 외쳤다.


“돈 내고 사 먹는 이 기분. 진짜 그리웠어!"


직접 만드는 브런치도, 모카 포트로 커피를 내릴 때 솔솔 나는 커피 향도 소중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숙련된 노동과 시간을 사는 행복도 그리웠다. 내 손으로, 내 시간을 들여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도 그 결과물도 마음에 들었지만, 가끔은 삶의 변주가 필요했다. 그 변주는 오랫동안 연구 끝에 나온 최선의 레시피와 조합으로 만들어준 버블티처럼, 돈을 낸 덕분에 얻는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이었다.



세상에는 조화가 중요하다. 우리가 알던 조화를 무너뜨렸던 락다운이 지나고 천천히 일상이 돌아오고 있었다. 밖에서 버블티 하나 사서 먹는 게 뭐 그리 행복했냐고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일상인 일들이 영국에서는 이제야 일어나고 있어서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콧바람 쐬며 남이 만들어준 버블티를 마시면서 제법 왁자지껄해진 시내 광장을 걸으며, 우리는 소비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미국의 개념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는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라는 문구가 담긴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가 대표적인 페미니즘 아티스트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아마 여성들의 쇼핑에 유난히 왈가왈부 많이 하는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살(buy) 거니까 내가 뭘 사든 상관 하지 마.’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하기에 사는 사람도, 주변 사람도 그 자유를 지켜줄 것을 당부하는 것 같았다.


 평소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저 문구가 100% 와닿지는 않았었는데, 지금은 충분히 공감한다. 우리는 가끔 소비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창작하는 시간, 마음속에 무언가를 축적하는 시간도 삶의 중요한 영역이지만 어떤 것을 소비하면서 온전히 누리고 시간도 나를 구성하는 큰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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