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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Jun 25. 2021

그 영국 날씨! 할 땐 몰랐던 진짜 영국 날씨

파전에 막걸리가 의미 없어졌다.

우중충하게 비 오는 거리. 양복을 입고 높은 모자를 쓴 채 걸어가는 영국 신사.


영국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중충하게 비 오는 거리.”이다. 영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도 다 알고 있을 그 영국 날씨.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우울한 날씨. 맑은 날을 보기가 힘들어서 해만 나왔다 치면 모두들 공원으로 달려가서 햇볕을 쬔다는 영국이었다.


처음 영국에 여행 왔을 때에도, 그 후에 잠시 출장을 왔을 때에도, 운 좋게 해가 쨍쨍 비추었다. 여행하기에, 사진 찍기에 최적의 날씨만 경험해봤던 터라 악명 높은 영국 날씨가 와닿지 않았다. 막상 살아 보니 왜 다들 “영국은 날씨가..”라고 말하는지 이해했다. 비가 많이 오고 흐리다는 설명은 영국 날씨를 이해하기에 부족했다. 영국 날씨, 그에게는 더 큰 한방이 있었다.


누가 섬나라 아니랄까 봐 영국은 정말이지 습했다. 특히 겨울에는 수분을 가득 머금은 공기 때문에 잠깐만 밖에 있어도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추위를 얇게 저며서, 분무기로 넓게 뿌려서 살갗 위에 켜켜이 쌓는 느낌은 패딩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한국의 엄청난 추위를 겪어낸 대한의 딸이 고작 영국의 겨울을 무서워한다고?”

친구들이 비웃었다.


“한국이 여기보다 더 춥지 않아? 여기가 그렇게 추워?”

한국에 대해서 꽤 들어본 현지 친구들도 믿지 않았다. 여기에 오기 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온도만 보면 한국보다 덜 추운 듯해서 겨울철에 입던 패딩, 기모 바지 및 기모 레깅스를 모두 서랍장에 고이 모셔 두고 왔다.


영국 추위를 글로만 배운 것이 잘못이었다. 추워도 너무 춥고 온몸이 시려도 너무 시렸다. 다행히 기숙사 히터 성능이 좋아서 방은 따뜻했지만 나갈 때마다 추위가 어느 틈에 속살을 점령했다. 다들 한국보다 덜 춥지 않냐고 하는데 추위를 느끼는 게 억울했다. 여기보다 훨씬 추운 한국에서도 맨날 밖에서 사진 찍고 돌아다니며 잘 지냈는데, 그새 늙은 건지 아니면 몸이 갑자기 약해진 건지 추운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이유는 습기였다. 일기예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뉴캐슬의 습도는 95%였다. 조금만, 5%만 더 채우면 비가 되겠다는 강렬한 의지였다. 이렇게 습하니 비가 자주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습하기만 하면 영국 날씨가 아니다. 언제든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리고 또 금세 그쳐도 이상해 하면 안 되는 날씨. 이게 바로 영국 날씨였다. 비 오다가 쨍해지고 쨍하다가 비가 왔다. “앗 햇빛이다!”하고 기회를 놓칠 새라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오면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산을 가지러 올라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번 오르락내리락 강제 운동을 당하고 나니 이제는 아예 나갈 때부터 방수가 되는 옷을 입고 나간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비를 맞으며 가던 길을 묵묵히 가는, 진짜 영국 사람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4월 중순까지도 눈이 왔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갑자기 햇볕이 내리쬐는 요상한 날씨가 반복되었다. 30분 단위로 변하는 날씨 덕에 날씨로 우울해할 틈이 없었다. 처음에는 비가 오면 “비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인데..”라고 말했으나,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파전 만들려고 반죽을 저을 때 즈음 비가 이미 그쳤을 확률이 95%이기 때문이다.

30분 안에 벌어진 눈과 해의 변덕:)


며칠 전에는 영국인 플랫 메이트 로나가 부엌에서 창 밖을 보며 소리쳤다.

"제발 어느 쪽인지 하나만 정해. 비야 아니면 아니야?"

이 날씨는 몇십 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언제쯤 익숙해질지 여전히 긴장된다.


세상에 단점만 있고 싫어하는 것만 모아둔 존재는 거의 없다. (가끔 있기도 하니, 안전하게 “거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영국 날씨의 장점으로는 청명하게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뒷마당에 나가 숨을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낮에는 걱정 없이 공원으로 나가 조깅을 할 수 있으며, 밤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을 가득히 메운 별들을 볼 수 있다. 좋은 건 빨리 익숙해져서 소중함을 까먹고, 나쁜 건 소화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영국 뉴캐슬 날씨는 맑으니, 좋은 것들을 누리러 당장 밖으로 나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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