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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Jun 12. 2021

같은 학과 중국인 친구들이 귀국했다

타지에서는 동질감의 느낌이 그립다.

현재 수학 중인 Media and PR 석사 전공 인원은 약 140명 정도 되고, 그중 85%에 해당하는 120명 정도가 중국 학생들이다. 학기가 시작했던 작년 10월부터 락다운이 해제된 올해 4월까지 영국의 코로나 상황은 계속 안 좋았기 때문에 절반 정도는 영국에 오지 않고 중국에서 수업에 참여했다. 5월 중순 두 번째 학기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귀국을 결심한 친구들의 SNS 포스팅이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를 핑계로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던 터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대부분 귀국한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유학을 오기 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공부하는 석사 생활을 꿈꿨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몇 명의 지인뿐이었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할 수도 있었는데, 늦깎이 석사 생활에 적응한답시고 만남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마음 잘 맞는 남자친구를 만나 재미있게 지내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위로해보았다. 충분하지 않았다. 소셜라이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 그 이상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영국에 오기 전 나의 외국 생활은 중국에서의 일 년 반이 전부였다. 얼굴만 봐서는 외국인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곳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소외감을 느낄 새 없이 친구들을 사귀고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유교국가로서 문화적 동질감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로에게 공감도 하고 알아가는 시간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와 달리 이 곳 영국에서는 자주 이방인의 기분을 느꼈다. 남녀평등, 인종 차별 금지 등 평등을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어떤 나라보다 가치관과 자유를 보장하려는 제도가 갖춰졌다는 나라, 영국이었다. 올해 3월 영국 정부는 영국 내에 제도적으로 인종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링크)를 발표했고,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를 인용하며 차별이 없는 나라, 영국이 자랑스럽다고 성명을 냈다. (물론 보고서가 발표된 후 여러 학자들의 반박(링크)이 있었고, 이 자료가 정치적 목적을 가진, 편파적인 자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주말마다 광장에서는 Fight racism을 외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보고서에, 그 시위에 동양인은 없었다. 모두가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며 인종의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인종 차별 관련 워크숍을 가보아도 동양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인도, 아랍 등 서/서남아시아 사람들과 동아시아 사람인 우리는 또 달랐다. 그들은 minority지만 안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바깥이었다. 동물권 보장, 환경 이슈 등 여러 가치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동양인은 동물보다도, 버려지는 플라스틱보다도 중요치 않은 존재인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중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친하지는 않지만 그 친구들이 같은 도시에 존재하고 연락만 하면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정감을 느꼈다. 영국 뉴캐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낱 같은 내가 피부색에 기대어 그들을 마음의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학과 내 유일한 한국인이며, 뉴캐슬에서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다는 나에게 “괜찮아. 걱정하지 마. 우리는 같은 동아시아 사람이잖아. 무슨 일 생기면 우리랑 이야기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에게서 미세하게 연결된 실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떤 커뮤니티에 깊이 속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중국에서 경험했던 한인 사회는 그 규모가 작아서 인지 어떤 면에서 더 집단주의적이고 한국적이었기에 그 불편함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희미하게라도 이어져 있던 안전지대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이 도시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미국, 유럽에 대해 역사, 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접하고 배우지만 그들은 배우지 않고 관심도 없다. 지극히 타자화 되어 있는 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무엇 하나 이야기할 때마다 모든 걸 설명해야 한다. 그 설명은 아마 이해와 공감까지 이끌어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임을 안다. 닿지 않는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몇십 년간 보고 듣고 느껴온 익숙함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같은 문화권 사람들과 서로의 안식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아주 끈끈하지는 않더라도 희미하게 나를 지지해주던 지지 기반들이 떠나가니, 이 도시에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남자친구도 있고 요즘 부쩍 가까워진 플랫 메이트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조금 공허했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외로우면서도, 그 어떤 집단에도 온전히 속해본 적이 없었다. 늘 발 하나 걸친 채로 다른 이상을 꿈꾸었던 나였기에 존재조차 희미했던, 내 마음속 아시안 커뮤니티가 사라지는 게 이렇게 나에게 큰 공허함을 가져다 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유독 반가운 마음이 든다는 사람들. 외국에 가면 꼭 한인 교회를 찾는다는 사람들.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했다. 낯선 이에게 쉽사리 곁을 내어주지 않는 타지에서 같은 문화권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팔 벌려 안아줄,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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