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학습권 방해 라구요?

교감 선생님의 전화를 받다.

by 초록창가



이 일을 글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추억할 일은 아니기에

일종의 회고 랄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자기반성적 글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주 낮에 사무실에 있다가 02로 시작되는 전화가 울렸다.



“**초등학교 교감입니다.** 어머님 되시죠? “


그때까지 아침에 컨디션이 안 좋았던 아이를 생각하며,

혹시 그 일 때문일까 생각했던 나란 엄마.


“네? 무슨 사항인데요?”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 치고는 교감선생님은 딱딱한 어조로 말씀을 이어나갔다.


“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제12조(훈육) 제6항 제1호, 제2호에 의거하여,

** 학생이 지속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여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학생을 별도 공간으로 분리조치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학생생활규정 사항을 따로 살펴보았다.) "



이게 무슨 말인 가.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엔 수업시간에 재미있다고 느껴진 말을 반복하여 선생님의 훈계로 복도로 나가게 되었는데, 다른 친구에게 손가락 욕까지 해서 교무실까지 가서 분리 조치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 중에 정신이 없었지만,

올해 초등학교를 입학한 아이가 학교에서 욕을 배워

오는 일이 있어서 그건 말씀드리자고 번뜩 생각이 났다.


“네, 욕을 하는 친구들 , 따라 하는 친구들

반 전체적으로 주의를 주었습니다. “


그 순간에도 우리 아이는 나쁜 것을 배워온 것이에요

란 말을 전하고 싶었던 나였다.


담임 선생님의 병가로 임시 담임 선생님의

이틀째 지도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임시 담임선생님과 연락을 취할 수 없냐고 하자,

교감 선생님은 그건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셨다.


“상담 선생님이 수업 때 계셨으니,

상담 선생님과는 통화하실 수 있습니다. “

그렇게 교감선생님과의 전화는 끝이 났다.


아이가 1학기에

수업태도가 좋지 않다는 피드백을 받아

집에서 많이 주의를 주었는데,

2학기 때는 ‘이제 잘하겠지. 담임 선생님도 일 있으면

전화 주신다고 했잖아.‘라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아이를 학교를 보낸 내 잘 못이었다.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 상담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1학기 때로 다시 돌아간 수업 태도.

상담선생님은 꽤 구체적으로 아이에 대한 상황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에게 ‘검사’를 추천하셨다.

작년 7살부터 산만한 기질이 있어서

심리 상담 센터도 가보고, 소아정신과 전문의도

찾아가 검사(정서 검사 및 Adhd 검사)를 받아보아도

뚜렷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올해 1학기때도 학교상담을 받아 보기까지 했는데.

상담선생님이 2학기때 바뀌어 그 부분은 모르셨나 보다.



. “작년부터 검사를 몇 번 해보았는데요,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어요.

일단은 집에서 주의 많이 주겠습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아 관련된 처방도 받을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을 상담 선생님께 토로하기까지 했다.


차라리 아이가 어떤 부분에 치료가 필요해서

처방을 받고 하면 좋을 텐데는 정말 내 진심이었다.


그날 저녁 집에서 학교 책상으로 놓아둔 책상에 앉아

아이와 특훈을 했다.


수업시간처럼 시간을 정해 바른 자세로 앉아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아이가 좋아졌다고 1학기 말에 평가받고는

안일했고, 아이에게도 좀 더 주의를 주지 못한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래도 학교에서 아이를 신경써주시는 마음이 보여

죄송한 마음과 함께 한쪽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그다음 날 상담 선생님이 전화가 오셨다.

아이가 하루 만에 몰라보게 수업태도가 달라졌고,

조금 흐트러짐이 있었지만 이내 고치려고 하는 자세가

보인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주변 친구들의 장난에도 2번 따라 하고는

하지 않았다는, 장족의 발전이다.


상담선생님이 어머님 걱정 많으실가봐

오늘 전화를 드린거 라고 해서 그 마음이 감사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하루 사이였지만, 가슴 졸이며

아이를 신경 썼고, 나의 간절한 기도하는 마음이

통한 걸까.

물론 아직은 방심은 이르고,

아이에게 지속적인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학교에서 교감샘께 처음 받아본 전화.

무소식이 희소식 이더라니.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게 그날 아이를 교실에서 분리조치 시킨 것이

아이에게도 맵지만 좋은 본보기가 되었고,

선생님을 비롯 학교 측에도 죄송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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