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백

사랑하는 만큼 두려움이 커진다.

서른네 번째 공백

by 은호

사랑하는 것을 잃는 건 무슨 기분인지,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줄곧 모르고 싶었다.

어차피 생명을 품고 태어난 모든 것들은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것뿐인데도, 그들이 제가 가진 것보다 더 짧은 수명으로, 더 빠르게 끝에 도달해 버린 때에 아직 달리고 있는 이로서는 내가 그들과 더 이상 함께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참 많이 괴롭고, 외롭고, 슬펐다.

서러웠고, 억울하고 화도 났다. 대상이 불명확하고 원인이 다발적인 감정들이 역류했다. 모두가 당연하듯 향하는 길을 멈추고 거꾸로 돌아보고 싶어진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과거에 머물고 싶다. 더 이상 죽음을 향해 너도 나도, 모두가 다가가지 않았으면 한다. 전부, 여기 이곳에 멈춰있으면 좋겠어. 경험이 축적될수록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게 된다.


건강한 이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오랜 시간 언젠가 다가올 상대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상대의 마지막 눈 감는 순간에 곁을 지켜주며 너로 인해 내 삶이 참 많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건강한 이별이 될 수 있을까? 내 품에 사랑하는 것들을 안아 들고 정말 많이 사랑했다고, 네 생의 많은 시간들을 나에게 허락해 줘서 고마웠다고… 더 많은 애정을 주지 못하고 때때로 네가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었던 모든 순간들이 미안했다고, 다음 생에 또 만나게 된다면, 네가 기꺼이 나를 또 만나준다면 그때는 더 행복하게, 네가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게 더 잘해주겠다는 말을 네게 해줄 수 있으면 건강한 이별이 되어줄까?

너는 내가 건네는 그 어떤 작별의 말도 이해하거나 기억할 수 없을 텐데. 스스로를 위한 오만하고 이기적인, 그저 고해성사와 같은 마지막 인사가 제대로 된 이별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네가 웃을 수 있는 이별을 준비해 줄 수 있을까.


나는 건강한 이별을 하는 법을 몰라.

내가 겪은 모든,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은 나에게 늘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고, 그것은 또 다른 흉터와 결핍을 만들었어. 그럼에도 나는 그 구멍이 영원히 메꾸어지지 않기를 바라. 비록 그로 인해 내 생에 우울이 쌓여갈지언정, 나는 그것이 내 삶에 남은 그들의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형태로든, 나는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거야.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아마 이런 사고방식이 건강하지 못한 이별을 형성하고 마는 가장 큰 이유일 거야.

크고 작은 구멍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나를 병들게 하고, 평생 나보다 먼저 끝점에 다다르고만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만을 곱씹게 하며, 그들이 없는 지금의 내가 달려 나가는 길 위에 나를 자꾸 멈춰 세우고 싶어지게 하겠지. 지금까지의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사랑하는 것들을 잃는 건 무슨 기분일까?

답을 내리기가 어려워.

너무 잘 알아서, 이제는 모르고 싶어.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

누구도 어떤 존재도 잃고 싶지 않아.

이별을 준비하고 싶지 않아.

반대로 나의 끝점은 어디일까?

나는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내가 도달할 즘에는

내 곁에 누가 나와 함께 달려주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것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존재들이

나보다 더 오래

차라리 나를 두고 계속 나아갔으면 하는,

너무 많이 사랑하는 이들이 이따금 두려움을 증폭시키곤 한다. 평온한 음계 속에 이따금 고막을 세게 진동시키는 불협화음의 비명을 지른다. 눈과 귀를, 생각을, 막아버리고 싶다.


있잖아.

오래 사랑할 수 있게 해 줘.

너를, 네 끝점의 마지막 순간의 극단에 도달할 때까지

그저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게 해 줘.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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