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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Dec 10. 2021

생일이 뭐가 대수라고.

여덟과 아홉 번째 공백

올 해의 생일에는 친한 친구가 주문 제작 케이크를 선물해주었다. 내 반려 동물을 본 딴 케이크였는데, 동그란 눈매와 입이 우리 집 바보(실은 가장 똑똑할 것이다) 막내와 똑 닮았었다. 엄마에게도 자랑을 했더니, 너 지금 우리 OO이를 먹을 거냐며, 아까워서 어떻게 먹냐고 나보다 더 즐거워하셨다. 사진도 많이 찍고, 양이 많아 친구와 나누어 먹었다.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


***


사실 성인이 된 뒤로, 생일 같은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초등학생 때처럼 친구들을 잔뜩 불러 생일파티를 할 것도 아니었고, 중고등학생 때처럼 내 키만 한 롤링페이퍼 편지와 온갖 장난감 같은 생일선물들을 함께 안겨줄 만큼 천진한 관계도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나는 내 생일이 다가올 적마다 설레고 기쁘기보다,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내 생일이 되면 여느 날보다도 아빠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그 한마디 건네어줄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게 된 탓이다. 그러니 차라리, 생일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생일 며칠 전부터 이미 우울해지는 내 감정은 마치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듯이 날짜를 각인시켰다. 그럴수록 평범하게 생일을 보내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하루 종일 또 혼자 삽질하며 최악의 생일을 보낼 게 뻔했으니까.


***


하지만 이런 나의 모순적인 태도가 무색하게도, 스무 살 적부터 매년 내 생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친구가 있었다. 나에게 반려동물을 닮은 케이크를 선물해주고, 생일 배지를 내 겉옷 위에 달아주더니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라며 길거리를 걷고, 생일이 되기 1분 전부터 기다렸다가 자정이 되면 나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해서 축하를 해주었다.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우울한 감정을 전부 덮어버렸다. 보이지 않았다.

네가 있어서 내 생일은 전혀 외롭지 않았고, 늘 나를 위해 만 하루를 기꺼이 내어주던 네 덕에 나는 걱정과 달리 항상 특별하고 즐거운 기억만이 남았다.


이제는 이전만큼 우울하지 않았다. 조금 싱숭생숭해지긴 해도, 이 정도는 조금만 다른 일에 집중해도 금방 사그라들 감정이었다. 내가 이토록 무뎌질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필히 너일 것이다.

네가 채워준 특별함이 돌아본 우리 기억들 위로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너를 만난 것이 내 삶에 선물이었다.


아홉 번째 공백 : https://brunch.co.kr/@bemyriver/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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