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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Dec 10. 2021

하지만 생일이잖아.

여덟과 아홉 번째 공백


여덟 번째 공백 : https://brunch.co.kr/@bemyriver/39



생각해보면, 가족들에게는 생일이라고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위해 말하지 않는 감정들만 끌어안고, 까맣게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나는 어느새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진 특별함을 자주 잊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특별한 생일도 있었다.


한 번은 고등학생 때였다. 엄마의 생신을 축하해드리려고 친구들과 함께 스케치북 편지를 준비했었는데-정말 고맙고 소중한 친구들이다-, 내 생일날 머리맡에도 똑같이 스케치북이 놓여있었다. 엄마와, 엄마의 직장 동료분들이 채워주신 나의 생일 축하 스케치북이었다.

수많은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운 정갈하고 어른스러운 글씨들이 하나같이 나라는 작은 존재의 탄생도, 성장도, 살아 숨 쉬는 모든 시간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마지막 장에 큼직하게 적힌 문장을 마주했을 때는, 기어코 스케치북을 끌어안고 아침부터 펑펑 울었다. 물론 마지막 장을 넘기니 당시에는 처음 받아보는 액수의 용돈도 있었다.


***


두 번째는 24살의 생일이었다. 어느 날 대뜸, 내 생일에 맞춰 엄마가 올라오겠다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 생일을 보낸지도 꽤 오래되었고, 주중인데 서울을 오겠다니 놀라서 물었다. 정말로 올 거야?

그리고 생일 전날, 엄마가 올라왔다. 엄마와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게 낯설고 생소했지만 그래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정작 엄마는 내 생일을 핑계로 오랜만에 서울과 한강 구경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지만.. 그래도 열심히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밤에는 근처에서 쏘아 올린 커다란 불꽃놀이도 봤다. 당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일을 맞아 나선 외출의 끝에 큰 불꽃들이 펑펑 터지니 꼭 나를 위한 불꽃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아주 잠시만.

그리고 돌아온 생일 당일에는 함께 늦은 아침을 먹고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다- 역까지 엄마를 바래다주었다. 전날에 받은 생일 축하도 당연히 또 받았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생일을 보냈던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새롭고, 낯설고 즐거운 생일을.


***


나는 내 우울을 이루는 근본적인 결핍과 그리움을 홀로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우울은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나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지만, 늘 나를 좀먹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부정하고 동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주변의 애정에 의지해야만 했다.

물론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신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그들 역시 그러기 위해 내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나’라는 존재에게 오롯이 부어주는 진심 어린 애정들이 나를 우울로부터 지켜주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해 주었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증명해내지 않아도, 그냥 나라는 사람이라서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나와의 만남이 그들에게도 역시 소중했다고, 그들의 말과 마음과 온기로 늘 표현해주었다.


그래서 내 생일은, 모순된 감정이 손가락을 곱아가며 나를 우울 속으로 끌어내려해도 결국 특별해질 수밖에 없었나 보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잃은 공허함 위로,

매일 그들이 채워주는 따스함이 쏟아지고 넘쳤다.

그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소중함을 만나기 위해 내가 태어났던 단 하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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