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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Dec 25. 2021

아빠에게 편지를 남겼더니 답장이 왔다.

열 번째 공백

아빠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도 이미 수 해가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지나간 날들 속에서 그리움을 먹고살았다. 정신 차리라며, 이제 그만하라는 말도 질리게 들었다. 나는 아빠의 장례식, 그 3일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슬퍼하는 걸 허락받지 못했다. 그런데 더 이상 울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게 너무 서러웠다. 그렇다고 이 서러움을 엄마나 형제에게 토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체할 것처럼 얹혀있는 감정의 덩어리를 쏟아내지 못해서, 나는 편지를 썼다. 아빠에게, 보고 싶다고.

‘잘 지내는지, 잘 먹고 잘 자는지.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

나 힘들 때만 아빠를 찾고, 이런 못난 딸이라 미안해. 하지만 나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단지 아빠를 쉽게 놓아줄 수 없는 것도, 곁에 없는 아빠를 매일같이 찾아대는 것도 전부, 지금도 나는 아빠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마음을 눌러 편지를 썼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았지만 그걸 전부 털어낸다면 분명 원망 어린 투정까지 보일 것 같아 꾹 참았다. 정말로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만 담은 짧은 편지였다.


그런데, 그날 밤 아빠에게서 답장이 온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 시작하는 문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너를 두고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지내주어서 너무 고맙고 기특하고, 아빠도 우리 가족이 너무 보고 싶다고.

아빠가 곁에 없더라도   챙겨 먹고 건강하게  지내면 좋겠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아빠는 항상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앞으로도  지내줬으면 해. 말과 함께 마지막에는 아빠도 정말 많이 사랑한다는 인사도 적혀있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알았다. 이 답장을 준 사람은 우리 아빠일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계속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나는 여전히 휴대폰 연락처에서 주인이 바뀌었을 아빠의 번호를 지우지 못했고, 아빠가 매일 닳도록 썼던 다이어리를 눈에 닿는 곳에 두고 꺼내보곤 했다. 없앤 지가 한참인데, 항상 받는 이는 아빠뿐이었던 집 전화번호도 지우지 못했다. 차마 편지로도 써내지 못한 그리움은 매일 일기처럼 기록했다. 내 그리움의 활자를 무게로 담아낸다면 땅이 전부 가라앉고 말 것이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내 감정을 돌아봐준 것이다.

그날은 하루 종일 답장을 꺼내 읽고 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 아빠의 목소리를 곱씹었다.

그리고, 누군지도 모를 상대에게 그 사람의 아빠가 되어 답장을 보내어준 당신에게

나는 마음 깊이 감사했다.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실까요.

완전한 타인을 위해 기꺼이 당신의 진심을 내어주어서, 당신의 마음이 쥐어준 찰나의 우연이

 생에는 절대 잊을  없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오늘이 그 누구보다, 어느 때보다 따뜻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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