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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Jan 03. 2022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숨을 새로 쉬었다.

열한 번째 공백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종종 내 호흡의 속도를 바꾸는 것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들로 ‘주변 사람과 호흡의 속도를 맞추면 안정이 온다.’는 식의 이야기를 아주 굳게 믿고 있었다.


***


처음 이 이야기의 효과(?)를 믿게 된 건 초등학생 때였다. 엄마가 출장을 가고 형제도 수학여행을 가서 집에 나와 아빠뿐이었는데, 어리광쟁이에 은근히 겁이 많았던 나는 아빠와 함께 자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잠이 오지 않았고, 벽의 모서리 따위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꼭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이상한 두려움이 있었다. 아빠는 피곤하셨는지 눕자마자 일찍 잠드셨고, 결국 오밤중에 나 혼자만 집 안에서 홀로 깨어 있었다. 그 사실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하마터면 자는 아빠를 깨울 뻔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이. 그래서 고개를 빼들고 아빠를 한 번 보았다가, 이불속으로 숨어서 아빠의 심장 소리와 함께 아빠가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천천히 들이쉬는 숨에 나도 함께 숨을 들이쉬었다가, 아빠가 내쉴 때는 나도 따라 숨을 뱉었다. 어른의 호흡을 흉내내기에 어린 나의 폐활량은 터무니가 없어서 오히려 숨이 가빠졌는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키득키득, 아빠가 깨지 않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눈을 감고 다시 아빠의 숨을 흉내 내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깊이 잠이 들었다.


***


그 뒤로도 종종 이 방법을 쓰곤 했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낯선 환경에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이라거나, 답답하고 우울한 생각에 빠져서 잠이 들 수 없는 날이면 주변의 호흡에 귀를 기울였다. 옆에서 곤히 잠든 친구들의 숨소리나 언니랑 같이 자겠다며 옆자리에 누운 사촌동생이 새근새근 자는 소리, 입시 시험을 치를 때마다 매번 따라와 준 엄마의 피곤한 호흡 같은 것들을 가만히 들었다. 그 호흡을 조금씩 흉내 내어 따라 내쉬면, 항상 잡생각이 사라지곤 했다. 똑같은 속도로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편안하게, 깊은 꿈을 꾸었다.


***


홀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면 누군가의 작은 호흡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본가에 있으니 당장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우리 집 고양이의, 아주아주 작은 새근거림 같은 것들을. 어떻게 숨을 쉬었더라, 이렇게 숨을 쉬다가 꼭 재채기를 하곤 했지. 분명 자고 있는데도 내가 이름을 부르면 귀를 쫑긋 거리고, 이름을 계속 부르면 귀찮다는 듯 한쪽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나를 보며 내 뺨을 핥아주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지곤 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차면 점점 고른 숨을 쉬는 방법을 까먹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이따금 내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안정을 주는지, 아주 조용히 천천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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