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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Feb 27. 2022

우리 20년 뒤에 오로라를 보러 가자.

열여섯 번째 공백

“나는 솔직히, 당장 며칠 뒤의 미래도 잘 상상이 안가.”

“그래서 가끔 당연하다는 듯이 몇 년 뒤나, 정말 먼 미래에도 서로 함께 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더라고.”

“고맙기도 하고. 나는 진짜 상상이 안 가거든.”


잘 모르겠어, 미래를 생각하면 기대보다 불안이 더 크고.. 주변에 일찍 떠나간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니까.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몰라. 망설이며 붙여낸 문장의 끝에는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근데 난 너랑 건강하게 엄청 오래 살 건데? 너랑 아줌마, 할머니가 되어서도 오늘처럼 같이 놀러 다닐 거야. 열심히 일 하고, 돈 열심히 벌고, 여행도 갈 거야. 국내도 좋고 해외도 좋고.. 너 오로라 보고 싶다며. 20년 뒤에 보러 가자, 같이.”


그 말에 기분이 미묘했다. 사람을 만나고 사귈 때, 항상 끝과 이별부터 생각하는 나와 달리 너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마치 진짜 그런 미래가 될 거라는 듯이 당연하게 우리를 생각하고 이야기하니까.


“…왜 하필 20년 뒤야? 그냥 지금 돈 열심히 모아서 빨리 보러 가도 되지. 핀란드는 너도 가고 싶어 했잖아. 아, 물론 시국이 끝나야 갈 수 있겠지만.”


그래서 나도 멍청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웃으며 답했다.


“아니~ 당연히 일찍 볼 수 있으면 좋지. 20년 뒤에는 다른 거 보러 가면 되니까. 또 보러 가도 상관없고. 아무튼 야, 네가 상상 안된다 해도 나는 너랑 같이 하고 싶은 거 많아. 그리고 내가 오래오래 살 거니까 너도 그냥 아무튼 살아. 오래, 아프지 말고.”


약간의 핀잔과 함께 친구도 웃었다.

추운 겨울의 초입에, 친구들과 함께 놀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에게 얼마 되지 않는 모처럼의 휴일이어서였는지, 이미 늦은 시간인 건 알지만 이대로 헤어지는 게 아쉬워 함께 밤 동네를 산책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새 너에게 약한 소리를 꺼내고 있었고, 너는 또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춥지만 온화하고 고마운 밤이었다.


그래. 우리가 뭐 엄청난 미래를 바라나.

그저 많이 아프지 않게 조심하고 언제나 지금 같지 않더라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고

삶에 환기가 필요한 날이면 함께 여행을 가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든

그저 그렇게 지내면 그만이었다.

지금까지처럼, 변화할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지금을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자.

건강하게 지내자.

어떻게든 행복하자, 우리.


그래서 20년 뒤에, 꼭 오로라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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