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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Jul 21. 2021

그래서, 불렀어. 보고 싶어서.

첫 번째 공백

아빠


어떤 형태로든 아빠를 부르면,

막혀있던 숨이 탁 뱉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불렀어.

보고 싶어서 아빠.

아빠랑 얘기하고 싶어.


***


“우리 딸은 아빠가 몇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딸 시집갈 때까지는 아빠가 살아야 할 텐데~”


언젠가부터 아빠는 내게 이런 말들을 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가, 당신이 죽을 것을 모르는 딸에게 했던,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버거웠을 말들.

아빠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제는 들려줄 사람이 없었다.


***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그 시기를 콕 집어 말할 수 있겠지만 언제가 가장 보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매일, 늘, 모든 순간에 항상 보고 싶었고 지금도 보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남들에게 당신의 얘기를 할 때는 얼마든지 아빠라는 이름을 꺼낼 수 있지만, 정작 그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본 적이 언제였는지.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그게 너무 서럽다.


서럽다 슬프다 힘들다

수천수만 번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한 번씩 털어내는 이런 마음들은 매일 매 순간마다 느끼는 그리움과 서러움 중 아주 조금일 뿐이라서,

이 조금의 마음이라도 이렇게 뱉어내지 않으면 참고 지내기가 아직도 여전히, 어려워지는 것이다.



***


중심이 잡혀있지 않으니까 자꾸 흔들린다는 걸 안다. 조금만 불안하고 예민해져도 맘이 붕 떠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렇게 1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마음을 다잡는 게 어렵다. 그저 예전보다는 그래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하고는 있다. 이것만으로도 진짜 많이 좋아진 건데. 괜히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나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싶다. 남한테 우울하거나 어둡거나 약해 보이는 사람으로 살기 싫다.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그걸 가장 바라 왔는데도, 단 한 번도 그렇게 살아도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라고 우울하고 힘들고 싶었나. 나도 봄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 날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함께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봄만 되면 따뜻하고 좋았던 기억들 끝에 꼭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서 힘들었다. 10년이고 20년이고 시간이 암만 흘러봤자, 아주 사소한 찰나만으로도 내 감정은 언제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누가 알겠어. 알아도, 그래서 무슨 상관이겠어.


서럽다 슬프다 힘들다

겉으로는 늘 괜찮은 척 밝게 웃고 지냈으니 이제와 남들에게 내뱉는다면 '멀쩡하던 사람이 왜 이러나' 싶겠지만, 나는 늘 속으로 참고 숨겨온 말이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나도 아빠가 보고 싶다고, 아빠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내 곁에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매일 바랬다. 그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인 걸 아니까 다른 말이라도 뱉고 싶은 것이다. 힘들고 슬프다고, 하다못해 아빠의 기일이 되었을 때 그냥 그렇다고 숨기지 않고 말하고 싶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정말 많이 힘들었고 너무 슬펐고 외로웠던 것도 다 맞지만 그만큼 아빠는 내게 너무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그런 아빠 얘기를 꺼내는 일이 남들에겐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게 늘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10년 넘게 보고 싶다는 당연한 감정조차도 입 밖으로 쉽게 꺼내본 적이 없어서, 가끔 이렇게 쌓이고 쌓인 마음들이 터질 때마다 감당이 되질 않는다. 줄곧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당장 지금을 버텨내는 게 고작이라 새로운 중심을 찾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매번 힘든 순간이 오면 너무 쉽게 무너지고 혼자서는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끝없이 불안하고 예민해진다.

하지만 난 그게 너무 싫어. 남들한테 의지하고 기대지 않으면 혼자서 이겨내지도 못하는 약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싫어. 건강하게 살고 싶다, 나도.

내 마음이 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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