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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Aug 05. 2021

울지 말고 잠이 들면

두 번째 공백

​​

근 며칠은 정말 많이 피곤하고 지쳐서 무척이나 잠이 필요한 날인데, 이상하게 잠에 들지 못한다. 어쩌면 꽤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누군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문득 수년 전에 듣던 라디오가 생각이 나서

더듬더듬 기억을 올라가 옛 라디오를 찾아 틀었다.


오랜만에 듣는 dj의 목소리는 여전히 편안했고, 그 목소리를 따라 잠시 눈을 감으니 라디오를 듣던 날의 내가 떠올랐다. ​예전 살던 집의 은은한 노란 조명 아래에서 라디오를 듣고 종종 사연과 문자를 보냈던 나.

내가 신청한 곡이 흘러나올 때면 기분이 좋았고 내 메세지가 읽힐 때면 위로를 받는 듯했다. 실제로 dj는 종종 내 사연을 듣고 짧지만 다정한 위로를 전해주기도 했었다. 길지 않은 그 한마디들조차 너무나 따뜻해서 마음속에 오래 머무르곤 했다. 누군가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듯한 기분에 잠깐씩 외롭지 않은 밤이었던 것 같다.

과거를 곱씹는 새벽은 조용하고 고요해서 dj의 목소리만 내 곁을 맴돌았다. 한 번씩 들려오는 선곡표의 노래는 완곡이 되지 않던 차에, 어떤 플레이리스트 하나가 떠올랐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그 라디오를 처음 듣던 날 내가 만들어둔 것이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쌓인 목록 가장 아래에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라디오에서 들려준 곡들 중 내가 좋아했던 곡들만 꼭꼭 눌러 담아 만든 플레이리스트였다. 이제는 듣지 않는 곡도 있었고, 아직도 자주 찾아 듣는 곡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라디오를 끄고,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노래의 가삿말들이 그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울지 말고’

하는 목소리에 나는 늘 울면서 잠이 들었다. 노래의 제목과도 같은 다섯 시 반, 해가 서서히 올라올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는 게 두려웠다. 그 누구도 관심은커녕, 알아줄 생각조차 않았던 내 감정과 속 얘기들을 오롯이 혼자서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는 하루가 또 시작된다는 게 무섭고 벅차기만 했다. 괜찮아질 거라는 가사에는 차마 공감할 수 없었지만, 실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없이 눈물을 쏟아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목소리를 들어도 울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 노래가 전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노래의 가삿말처럼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되었다.


​오늘은

울지 말고 잠에 들자

아침 해와 함께 눈을 뜨자




그리고 지금, 눈을 뜨고 바라본 창가로 아침 해가 환하게 쏟아진다. 내 하루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던 예전과 달리,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무서웠던 미래는, 언젠가 덤덤히 떠올릴 수 있는 과거가 되기도 한다. 지나간 나의 수많은 아침이 그러했듯이.


그러니

이 환한 빛이 매일 나와 당신의 아침을 밝혀주기를.

오늘은 외롭지 않게, 오늘도 울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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