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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Jan 04. 2024

마음의 상처는 아물며 나만의 무늬를 만든다

치유와 성장을 위한 글쓰기

2022년, 2023년 마음에 상처 입을 일들이 많았다. 아닌 척하려 해도 들은 말들은 아픔이 되었고 내 안에서 곪아 터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책을 읽었고 글을 썼고 공원을 걸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 공원의 소나무 길을 걷다 보면 내가 가진 그 아픔들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 아픔들의 크기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지' '그 사람도 힘드니까 나에게 그랬겠지' 하지만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의학과를 찾아가 의사 선생님께 "선생님, 제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제가 그의 말을 용서해야 할까요?" 하고 물었다. 용서를 해야만 내 마음이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아니요. 억지로 용서할 필요 없어요. 선생님은 그냥 그 일로 괴로워하지도 말고 그냥 두세요. 그 말들로 상처 입었던 마음이 괜찮아졌다면 그냥 내버려 두세요.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왜 억지로 용서하나요.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닌데요. 그냥 두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사과를 받지 못했던 마음도 괜찮아졌고 억지로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그의 사과도 받지 않았는데 용서한다는 표현이 더 웃기긴 하다. 사과를 할 생각도 없는 사람을 나 혼자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내 마음에 부침이 일어나 그의 말을 생각하는 것도 괴로웠고 그의 사과를 받는 일을 한다는 것도 너무 버거웠다. 그 과정의 힘듦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두기로 했다. 그가 한 말을 나는 들었으나 내 것이 아닌 것으로 그 자리에 돌려놓고 왔고 그 자리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어떻게 전하든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의 주인은 내가 아닌 그였으니까. 잘못을 한 것은 그인데 그의 말의 칼을 받은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저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 권력자 옆에 붙어 기생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날 그 자리에 모든 말들을 돌려놓고 왔다. 법륜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군가 쓰레기를 나에게 건넸을 때 그것을 내가 받지 않으면 그 쓰레기의 주인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받지 않기로 하고 그 자리에 돌려놓고 왔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진 말들이 돌고 돌겠지. 하지만 나는 누가 그 얘기를 해도 덜 상처받을 것이다. 이미 나는 그 자리에 돌려놓고 왔기 때문이다. 그 말의 주인은 그다. 그이기 때문에 그 말의 값은 그가 받을 것이다.


지난 11월 그 말이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 참 컸다. 그런데 그때 나를 잡아준 한 동료의 말이 있었다. "자기가 그걸 해도 돼. 사과를 받을 수도 있어. 하지만 왜 자기 몸을 던져서 그렇게 사과를 받아내려고 그래. 그리고 그의 사과가 자기가 바라는 사과의 무게와 같을까?" 그날 집으로 돌아와 그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동료의 말이 맞았다. 그의 말과 내 말의 무게는 달랐다. 그냥 진정성 없는 말의 사과를 받겠다고 내가 내 일을 포기하며 내 온 삶을 던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넘기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뵙고 하면서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갔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부끄러워야 하고 그 사람이 사과를 하기 위해 괴로워야 하는 게 상식적이지만 그렇지 않다. 악도 차오르면 기울어질 때가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 순간들을 넘기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들을 잘 넘기고 온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하다. 나를 잘 보존하면서 오길 잘했다.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않아서 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본성에 맞춰 살아가야 함을 다시 깨달았다. 상처 많은 내 마음과 몸을 사랑한다. 상처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잘 극복해서 내 마음에 드는 나로 성장하려고 애쓰는 내가 참 마음에 든다. 내가 경험하고 극복한 일들이 나를 더 선명하게 만들고 나를 더욱더 무늬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몸의 상처는 아물며 흉터를 남기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는 아물며 나만의 무늬를 만든다. 마음의 상처를 잘 낫게 하면 나라는 사람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삶의 시련들에 상처받으며 살아가겠지만 그것이 나만의 무늬를 만든다 생각하면 기꺼이 이겨낼 만하지 않을까. 멋진 옹이 무늬를 가진 원목가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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