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공부하느라 바빠야 할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동안 아들은 사춘기의 내적 성장을 한껏 이뤄낸 듯하다. 아이 속에서 어떤 폭발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밖은 평온했지만 엄마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았다. 성실한 아이가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불안했고 화가 났고 짜증이 났고 엄마의 자리가 버거웠다. 하지만 아이는 몸을 움직여하는 것을 안 할 뿐, 그 안에서는 참 많은 것들을 해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의 내면이 더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고집을 꺾을수록, 아이의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일수록 아이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내 안에서 바깥의 잣대와 평균을 들이밀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아이 본연의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아이의 1인 1역이 학급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2학기에는 학급 신문을 만들더니 마지막에는 2023년도 한 해 돌아보기를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여러 페이지의 학급 신문으로 만들어서 배포했다. 담당자에 적힌 아이 이름이 낯설면서도 기특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학급 신문을 만들 줄이야. 아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눈이 자꾸만 바깥을 향해서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으면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리라. 겸손함을 모르고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로만 알고 실패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리라. 모범생처럼 잘 자라다가도 이렇게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내적 성장을 하느라 한참을 방황하며 애쓴 아이 덕분에 나는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이 작아서 이 아이들을 잘 품지 못해서 이런 일이 있을 때 많이 아프지만 그 덕분에 나는 깨지고 다시 커짐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 덕분에 그래도 괜찮은 교사가 되어간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내 말대로만 컸으면 분명 나는 개성이 다른 학생들을 품을 생각도 못 했으리라. 형제가 많아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나의 형제들을 보면서도 생각한다. 아이들은 제각각 자신의 몫을 해 내고 자신의 갈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것을.
아이의 학급 신문을 보면서 열심히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했다. 담임선생님과 각 교과 선생님들의 인터뷰 내용은 아이들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말들이었다. 선생은 먼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먼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더 많아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인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과 선생님 한 분께서 말씀하신 공부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에 무척 공감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공부는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 내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교사든, 요리사든, 기술자이든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 애쓰는 공부는 내 능력을 키울 뿐만 아니라 내 삶도 가꾼다. 나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도 할 줄 안다. 그렇기에 수능 공부에 국한하여 애쓰는 것만이 공부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은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아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좋은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학교를 다닌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선생님들이 말씀을 받아 적으며 타이핑하던 그 마음이 어디 가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선생님들의 좋은 말씀은 지금은 그저 물처럼 흘러내리겠지만 아이를 성장시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이 쑥쑥 자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