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건 나의 일이 아닐 것이다. 부모가 스스로 한 개인으로서 행복하고, 그래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그 길을 지향하게 만드는 것, 대신 아이가 따라올 그 길의 돌을 몇 개 골라두어 조금은 덜 넘어지게 하는 것,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되 자신이 원하는 문법으로 빨간 줄을 그어 교정하려 하지 않는 일. 부모도 아이도 저마다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써나갈 때, 그리고 그 언어가 자연스럽게 닮아갈 때, 그 어느 존재보다 멀면서도 가까운 하나의 공동체가 탄생한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김민섭 지음, 어크로스, 112쪽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를 읽다 보면 김민섭 작가의 글에 빠져들게 된다. 온유하고 다정한 그의 말투에 내 마음이 포근하게 감싸지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동글동글 따뜻한 말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역할에 대한 내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라는 자리가 참 힘들다 생각하면서도 더 깊이 사유하여 고치지 못하고 항상 그 순간들을 넘기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야 내가 조금 더 젊은 엄마였을 때 좋은 부모의 모습을 고민하고 실천하지 않았을까를 후회했다. 아니다, 항상 고민은 했다. 다만 그것이 온전히 나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그렇게 내가 주도적인 위치에서의 엄마여도 아이들이 받아줬기에 덜 깨우치고 실천하는 엄마로 살았던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할 때,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도 많이 아프면서 엄마로서의 세계 하나를 깨고 함께 나온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지혜로운 엄마로 거듭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실수하고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게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엄마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의 엄마로 성장 중에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싶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욕심이리라 생각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도움은 어느 정도의 폭력성을 갖게 되고 든든히 지원하고 싶다고 하지만 너무 많은 희생을 하며 지원하게 된다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종류의 억울함을 갖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만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도 잘 다듬어서 아이가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주어야 함을 알아가고 있다. 자녀와 부모 간에도 어느 정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한 것이다.
원래 내가 가진 기질을 많이 눌러야 그럴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오히려 뚝딱거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그래도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들의 든든한 지원자, 응원단이 될 거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고 이야기를 한다. '엄마도 실수하며 사니까, 실수를 통해 배우며 고쳐나가는 중이니까, 너희들도 실수해도 괜찮아, 스스로 나아지려고 노력하면 괜찮아' 하고 말해 준다.
김민섭 작가의 글을 읽을 땐 부모는 다정한 언어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려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쓰다 보니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에게 맞는 부모의 모습을 찾아가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끼워 맞춘 부모는 결국엔 또 그러한 것들을 벗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렇기에 남의 옷을 입고 보기 좋은 모습의 부모 노릇보다 자기를 더 잘 들여다보고 자기 다운 부모의 모습을 갖추는 게 아이와 부모 자신을 위해 좋을 것 같다. 말은 다정하면 좋지만 다정하지 못해도 가시 돋친 말을 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 부모의 언어가 자녀에게 가서 자리 잡으니 조금 더 동글동글하게 따뜻하게 말하면 좋겠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 스스로 자신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줄 수는 없으니까. 나를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이 자녀에게 흐르게 하면 좋을 것 같다.
김민섭 작가의 다정한 말투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왜 뾰족한 말들을 많이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의 꼬리표를 없애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만이 내가 살 길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둘째다 보니 온유한 언니와 달리 나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전투적으로 움직였다. 대부분의 둘째가 좀 못 됐고 혁명가 기질이 많다.
일하시는 엄마가 오기 전에 집안 정리를 해야 할 때도 언니는 자신이 청소를 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언니가 없을 때 나는 동생들을 불러놓고 너는 안방, 너는 작은방 이런 식으로 할당을 주고 청소를 시켰다. 나도 했지만 동생들도 쉬게 하지 않았다. 가족모임을 할 때 남동생은 나의 자녀들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어쩌면 진심일지도- "아이고, 너희들 잘 살고? 내가 너희 엄마 밑에서 고생을 해서."라고 하며 장난을 친다.
중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던 때였고 고등학생 때는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라서 성적이 우수해 장학금을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장학금은 운이 좋게 대학생 때까지 이어져서 언제나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투쟁하듯 살았던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자기 계발을 하고 그 안에서 나의 진로를 고민하다 사표를 쓰고 교사가 되었다. 정말 운이 좋게 빈 공백의 시간이 거의 없게 모든 일들이 착착 맞아떨어진 시간이었다. 젊은 시기 대부분의 시간을 도전, 실패, 성공의 연속성 안에서 보냈기에 내 말과 행동은 거침없고 뜨겁고 따가웠다. 나의 많은 부분을 그런 말과 행동, 기질이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나의 삶의 8할이 노력, 노오력이다보니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노력이었다. 이런 나의 모든 기질은 통제형 부모의 모습으로 나왔다. 그래서 아이들 어릴 때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내 안의 기질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육아서를 읽어도 그 순간이 지나면 또 나의 기질이 나오고 말았으니까. 이때 나를 더 아는 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
더 성숙한 엄마의 모습을 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되돌릴 수 없으니 그 순간들의 최선을 받아들이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고자 한다.
지금은 자신의 세계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내가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것,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 실수해도 실패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 너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을 내 온몸과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라는 존재로 살아가면서 나도 이해하고, 내 자녀들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우리 엄마, 남편의 엄마도 이해하고 있다. 예전보다 전투력을 상실했고 뜨거웠던 마음의 온도도 내려갔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조금 더 다듬어지고 따뜻해진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중년의 시기를 이렇게 내려놓고 다듬어가면서 보내다 보면 노년의 나는 다정한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겠지. 그 순간을 기대하며 오늘도 조금 따뜻하게 지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