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인생책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중 하나는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제일 첫 장에 나온 자존을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다. '나를 중히 여기는 것'을 자존이라 하는데 이 마음이 있으면 풀빵을 구워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메멘토 모리와 아모르 파티', '죽음을 기억하라'와 '운명을 사랑하라'...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니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 네가 처한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이죠.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운명이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
-『여덟 단어』-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사는 것이 삶의 중요한 태도라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열심히 살았지만 내 마음속에 항상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내 안에 점을 찍지 않고 바깥에 점을 찍은 채 남들의 방향과 속도를 보며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나에게 부족한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더 열심히 남들의 이상을 좇아가며 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공허함과 마주했다.
그 공허함이 불평, 불만을 만들기도 했고 두려움에 떨게도 했다. 열심히 하다가도 아무것도 못 하는 날들이 있었다. 내가 나를 중히 여기는 마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지 못하며 살았던 것이다. 가짜 자존을 가진 채로 살아온 날들이었다. 내가 이룬 성과가 나를 중히 여기게 해 준다고 믿었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실패한 나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실수에도 너그럽지 못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나라도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살아야 함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내 안에 점을 찍고 나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남들에게 가는 시선을 흘려보내고 다시 나에게로 돌렸다. 그렇게 하나씩 내 안에 점을 세우다 보니 부족한 나도 기특하고 애틋해졌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국립대에 들어가고, 졸업 전에 취업도 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새로운 꿈을 도전하여 초등교사가 된 것이 기특했다. 또한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실수투성이여도 매 순간 괜찮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던 것은 진실이기에 그 노력이 참 갸륵하다. 학급의 아이들에게 좋은 말로 행동발달 종합의견을 써 주듯 나의 삶을 돌아보며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내 안에 점을 찍고 나를 들여다보니 내게 소중한 것들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나에게는 가정의 평안이 제일 소중했다. 그 안에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의 몸과 마음의 건강함이 최우선이었다. 그다음이 내 마음을 담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고,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
나에게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엄마의 모습도 조금씩 바꿔 나가게 되었다. 성취 지향적인 나의 삶에서 과정을 더 바라보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품을 내어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노력형 엄마이지만 이전의 내 모습보다 지금의 모습이 꽤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예전의 내 모습에서 지금의 모습의 비교이다. 이미 넉넉한 품을 가진 엄마들과의 비교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가끔 살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이 드는 날, 아무것도 아니었던 날들을 생각한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해서 지내던 날들, 다니던 회사를 나와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그 시간, 몸과 마음이 아파 학교를 떠나 있던 시간. 이 시간 속의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지만, 무엇이 될 수 없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날마다 아무것도 아닌 날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하루하루 조금씩 쌓아가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미래를 끌어당긴 것은 하루하루 조금씩 쌓아온 그날들이었다는 것을. 그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아무런 결실이 없는 지난한 시간을 잘 견뎌냈기에 교사의 삶을 살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잘 건너온 나의 삶이 더없이 소중한 것은 내가 엄마이자 교사이기 때문이다. 잘 닦아진 아스팔트 길이 아닌 울퉁불퉁 시골길로 교사가 된 나이기에 '지금 너의 아무것도 아님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시간이 와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여전히 내 안의 점을 찍으며 길을 가고 있다. 내 안에 점을 찍고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자녀들에게,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많이 흔들리면서도 내 안에 집중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자녀도, 나의 학생들도 자기 안의 별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