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카페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의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30대가 되어 결혼을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나이인 만큼 이상형의 조건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이런저런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우리는 각자의 이상형을 메모지에 적어 보기로 했다.
이상형의 조건이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손에 쥐고
문득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이게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되는 마냥 중요한 조건을 하나라도 빼먹었을까 고민 고민하며
외모, 성격, 직업, 종교 등 이상형의 조건들을 메모지에 빼곡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고
약 20가지가 넘는 항목들을 나열하고서야 팬을 내려놓았다.
완성된 나의 이상형 리스트가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손에 쥐고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의 이상형과 만날 확률, 그의 이상형이 나와 일치할 확률,
그와 운명처럼 만나게 될 확률은 0%에 가깝다.
첫째, 과연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존재할까?
얼마 전 재미있는 앱을 본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 내가 원하는 이상형이 몇 명 존재하는지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해보는 앱이었다.
15가지 질문에 대해 원하는 조건을 선택했을 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나의 이상형은 약 360명,
여기에 추가로 메모지에 적힌 항목들까지 모두 적용한다면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그 이상형과 내가 인연이 닿을 확률, 그의 이상형이
나와 일치할 확률까지 생각하면 굳이 계산해보지 않아도 불가능한 현실이란 답은 쉽게 도출된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에게 부족한 부분이
사랑의 깊이를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나의 이상형 조건과 얼마나 일치했을까?
약 20가지가 넘는 항목들에 대하여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가장 많이
일치하는 사람이 30%를 채 넘지 못했다.
나는 이상형과 30%도 일치하지 않는 그 사람과 어떻게 먼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그에게 비어있는 70%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불만족스러워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에게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아닌
감싸 안아야 할 이유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형의 조건의 일치 여부가 사랑의 정도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지 않았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랑의 시작이 이상형과의 매칭률로 결정된 적도,
헤어짐의 이유가 이상형과의 괴리율이었던 적도 없다.
마지막으로 20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이상형이 나타난다면 난 당연히 사랑에 빠지게 될까?
사랑은 그런 이상형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의 영역인가?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 속에서 이상형과의 매칭률을 계산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영역에
들어갈지를 결정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 시작점이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헤어짐을 결정하는 순간에서도 이상형과의 괴리율이 이유가 된 적은 없다.
이러한 질문과 답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만나고 헤어짐을 결정하는 과정은
계산적 변수들보다 감정적 요소들의 동요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건이 아닌 그의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런 의미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한 후 노트를 덮으며,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나의 이상형 조건을 모두 일치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형은 그저 머리로 만들어낸 이상적 기준에 불과할 뿐,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부터 시작되기에
그의 조건들이 아닌 그의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