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항소의 이유서, 판사들도 돌려봤다는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의
긴 글 끝에 나를 설레게 하는 한 문장이 있다.
모순 투성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유시민의 '항소의 이유서' 中 -
그의 불완전함이, 부족함이
그를 더욱더 사랑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모순 투성이기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한다.”
조국을 향한 그의 고백이지만 마치 연인을 향한 고백처럼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난 누군가에게 모순 투성이기에 더욱더 사랑한다 고백할 수 있을까?
그녀의 불완전함이, 부족함이 내가 그녀를 더 사랑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대학시절 심리학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론 중 하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였다.
사람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이상이 현실과 불일치할 때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바꿈으로써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켜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려 한다는 이론이다.
모순되게도 상대와의 관계에서 생긴 불편함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더욱더 사랑하는 것이다.
그녀의 단점이 크게 느껴질 때, 관계의 불편함이 생겼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그녀의 손을 놓는 것,
두 번째는 더욱더 그녀를 사랑함으로써 현실의 문제가 불편하지 않다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의 단점 보이기 시작할 때, 운명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지겨워질 때,
가슴 설렜던 부분이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 특별하다 여겼던 것들이 다르다 느껴질 때
헤어짐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면 상대와의 관계에서 생긴 불편함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순되게도 그녀를 더욱더 사랑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흔히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그녀의 단점을 보이지 않는 이유,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단점이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현실의 문제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작점은 그의 장점을 발견했을 때가 아니라
그의 불완전함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사랑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의 관점에서 비춰봤을 때 그 자체로 모순적 행동이다.
나보다 그녀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것, 그녀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 희생을 행복함으로 여기는 것, 그 자체가 이성적 사고의 범위를 넘어선 비논리적 영역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또한 이성적, 합리적 판단으로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순 투성일수록 그녀를 더욱더 사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내가 원하는 장점을 갖춘 사람을 찾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불완전함을 내가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