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약속된 장소는 서울 도심의 오래된 커피숍이었다. 조용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현우는 시간보다 이른 도착에도 불구하고 이미 누군가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낡은 회색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얼굴엔 깊은 주름과 무표정한 눈빛이 어른거렸고, 책상 위에는 얇은 가죽 서류가방 하나만 놓여 있었다.
"정 박사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이름보다 목적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현우는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서류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정현우가 본 적 없는 고대 상징들이 정리된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분명 아직 발굴되지 않았거나,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유물들이었다.
"이 자료는 어디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그것'을 추적해왔습니다. 당신이 '헬리오스 코드'라 부른 것, 우리는 '기억의 구조'라 부르죠."
남자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위압적이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이 지식은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것을 봉인해왔죠.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열어야 할 때입니다."
현우는 눈을 떼지 못한 채 사진을 넘겼다. 그 중 하나에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찾은 캄보디아 석판과 흡사한 문양이 새겨진 유물이 있었다. 다만 그 아래에는 '기밀 등급: 레벨5'라는 표식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당신이 이 연구를 계속하길 바랍니다. 다만, 외부에 공개되는 방식은 우리가 조정할 겁니다."
"왜 저죠?"
남자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당신은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요."
현우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이제 그는 이 길이 단순한 학문적 여정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뿌리를 가진 흐름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든 파일을 닫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진실은 결국, 모두가 알게 될 겁니다. 저는 그 다리를 놓는 역할만 하겠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리 위에, 어쩌면 당신 혼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현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베일 아래에 있던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