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통과했다면 8부 능선을 넘은 것이다. 이제는 면접이다. 면접은 입사를 위한 최종 관문으로서,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외국계 기업의 면접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들여다보기 전에, 큰 틀에서 면접이라는 프레임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면접이란 무엇일까?
면접은 지원자와 회사가 만나는 '만남의 자리'이다. 필자는 면접을 남녀 간의 '소개팅' 혹은 '미팅'에 비교하고 싶다. 누군가는 엉뚱한 비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 상대가 누군지 좀 더 면밀히 파악하고, 나 역시 상대에게 나를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둘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소개팅은 수평적인 관계의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지원자들이 면접의 자리에서는 수평적인 만남의 자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면접을 준비하기도 전에 이미 '갑(회사)과 을(지원자)'의 관계에 자신을 묶어 버린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상대는 나의 능력을 원할 뿐이고, 나는 내 능력을 회사에 제공하는 관계이다. 인원 선발 권한을 가진 회사에 내가 찾아간다고 해서 을의 입장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 특히 외국계 기업의 입사 지원자와 면접관은 비즈니스의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지원자는 '면접'이라는 단어가 주는 프레임을 재 설정할 필요가 있다. 면접의 자리는 갑과 을의 만남이 아니라(회사가 본인들이 갑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동등한 두 주체가 만나는 비즈니스 미팅의 자리라는 전제하에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 더 책임감 있고, 더 수준 높은 면접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회사와 지원자의 관계가 '갑과 을'이 아닌 수평적 비즈니스 관계라는 말을 면접준비를 대충대충 편하게 하거나 연장자에게 무례한 태도를 취해도 된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진 말자. 수평적 거래 관계에는 항상 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회사에서는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당신을 뽑으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도 그에 걸맞은 수준과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입사 지원자에겐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은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다. 한 명의 어른이고 본인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사회인의 신분으로 면접장에 오는 것이다. 회사에서 십수 년을 근무한 면접관과 실력 면에서 1:1 관계를 만들 수는 없다. 면접관들 또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에게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준비는 요구할 수 있다. 지원자는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지원자가 그 안에서 본인이 가진 역량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이에 대한 답을 해 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 면접을 준비한 지원자는 합격률이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다. 지원하려는 회사가 무엇으로 돈을 벌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지원한다는 자체가 너무 어린아이 같은 발상이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말이겠지만,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첫인상은 면접을 떠나 사람대 사람의 첫 만남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서양의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는 단 2초가 소요된다.'라고 했다. 우리가 의식을 하든 안 하든, 2초면 상대방의 첫인상이 결정된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작용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복장'이다. 자신의 신체조건에 잘 맞는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는 것은 프로의 기본 조건이고, 면접 합격 여부를 떠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사회인으로서의 예의이다. 어떤 회사든, 어떤 업종이든, 가장 적절한 선택은 언제나 '정장'이다. 스티브 잡스는 검은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를 좋아해서 매일 입은 것이 아니다. 그는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없애기 위해 한 가지 스타일의 옷만을 입었다고 한다. 면접 기간은 머릿속이 복잡하고 신경이 예민한 기간이다. 여러 가지 잡생각을 하지 않도록 삶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면접 시 복장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차분한 색상의 정장 원툴로 밀고 나가라. 남자는 단정한 패턴의 넥타이를 꼭 매는 것이 좋다. 면도는 깔끔히 하고 손톱을 짧게 깎아라. 여자들은 화려한 네일아트나 시선을 집중시키는 액세서리는 면접 시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복장을 제대로 갖추는 것은 입사 지원자 만의 의무가 아니다. 면접에 참여하는 면접관의 예의이자 의무 이기도 하다. 만약 면접을 보러 갔는데 팀장이나 임원, 즉 나를 선발하는 권한을 가진 높은 사람들이 지저분한 면바지, 등산복, 작업복, 헐렁한 골프티셔츠 따위의 옷을 대충 걸치고 면접을 보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바로 집으로 되돌아가길 권장한다. 이건 진심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 회사가 당신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그들이 그 회사에서 살아가는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외국계 기업을 바라보고 준비해 온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외국계 기업은 R&R 이 명확하다. 신입사원이라도 본인이 해야 할 Role에 대해 숙지가 필요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무슨 일을 주로 하게 될지 판단이 선다. 공학 계열의 지원자라면, 실무에서 필요로 하는 기초 이론이나 전공필수 과목에 나오는 몇몇 공식 등을 외우고 가면 도움이 된다. 만약 면접 도중 공식이 생각나지 않는다 해도 포기하지 말자.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말로 설명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이론의 원리를 차분히 설명할 수 있다. 공식만 앵무새처럼 달달 외우는 사람 보다, 차분하게 이론의 내용을 비유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좋은 점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어려운 지식을 남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대학교 4학년 공학계열 졸업 예정자 이거나 졸업자인데 무슨 공식을 외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곤란하다. 공식을 외우진 못해도 '이런 분야에서 어떠어떠한 지식은 중요한 내용이다.'라는 정도라도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한다.
'입사동기'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묻는 질문이다. 입사 동기에 대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두루뭉술한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전에도 말했지만, 외국계 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3학년부터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미리 준비한 회사, 혹은 유사 분야에 지원한 사람은 다른 곳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부랴부랴 원서를 준비한 사람과 질적으로 다른 답변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입사 동기는 명확해야 한다.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3학년 때부터 전시회나 박람회 참가를 통해 이 기업을 지켜봤고 그에 맞는 역량을 준비해 왔다.'라고 말하는 지원자는 면접관의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회사 관리자 입장에서 신입 직원에게 가장 바라는 역량을 딱 하나만 뽑는다면 '책임감'이다. 책임감은 어른의 기본 소양이다.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끝내고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다음은 영어이다. 영어는 이전 글에서 설명했지만, 이공계 학생들은 토익 성적 800점, 문과계열은 900점 이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외국계 기업에 지원할 때 영어성적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영어 성적이 형편없는 사람들이다. 영어 성적표는 중요하다. 말로 설명해야 할 많은 것을 성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영어성적이 있는 사람이 영어면접에서 버벅대는 것과, 영어성적도 없는(안 좋은) 사람이 영어면접에서 버벅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영어성적은 입사를 해서도 매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해외 출장을 갈 사람을 정할 때, 해외에서 오는 손님을 담당할 사람을 정할 때, 영어 문서 작업을 할 때, 관리자들은 뇌리에 각인된 영어 잘하는 사람을 우선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다. 외국계 기업에서 영어 실력은 기회의 횟수와 정비례한다. 그 시작은 당연히 영어공부이다. 최소 토익 800점은 맞자. 외국계 기업에 입사를 결심한 순간 영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자유롭지 않다는 표현을 하기 전에, 외국계 기업을 지원하는 사람은 영어를 많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영어는 앞으로 당신의 커리어 생활 내내 소통을 위한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영어에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영어 공부에 취미가 없거나, 영어를 어떤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미안하지만 외국계 기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외국계 기업의 면접관은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다. 외국계 기업이라도 한국 사회의 로컬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존중해 주는 편이다. 결국 외국계 기업이라도 한국사람이 주가 되며 그들의 후배들 또한 한국인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한국 사람들끼리 면접을 보는 경우이다. 이때는 대부분 영어 면접보다는 '영어 테스트'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한다든지, 영어 문서를 제시하고 한글로 요약/설명을 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면접 자체를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다. 외국계 기업에는 대부분 Asia 지역을 담당하는 '아시아 퍼시픽(AP)'이라는 조직이 존재한다. 한국은 AP 산하에 위치한 조직이고 AP 총책임자는 서양 사람이거나, 동양 사람이라도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AP매니저는 자신이 관리하는 Asia의 전 지역을 두루 다닌다. 그런 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 면접일정을 잡아 AP매니저 참석 하에 면접 전체를 통으로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차분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당신에게 원어민 같은 영어실력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과 논리를 지키면서 차분히, 천천히 면접에 임하면 된다.
정리하면, 외국계 기업의 입사 지원자와 면접관은 동등한 관계이며, 그만큼 프로페셔널한 준비를 요한다. 전공 필수 지식, 회사 입사 동기, 영어 소개, 정도를 준비하면 좋다. 끝으로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소양'이다. 기본소양은 상식, 지혜, 업무에 관한 태도, 통찰력, 창의력 등을 모두 고루 갖춘 통합적인 지식이다. 우리는 단편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만 뽑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 일을 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기본 소양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독서'다. 소설도 좋고 교양 과학도 좋다. 필자는 자신의 전공과 다른 분야의 독서를 권장하는 편이다. 공대생이라면 종교나 철학을, 문과생이라면 최신 컴퓨터 기술이나 과학에 대한 책을 추천한다. 대학생활 동안 하루 1시간 정도만 할애하여 독서를 해 보자. 독서는 회사 생활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독서가 충실히 된 사람은 면접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회사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