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어렸을 때부터 치킨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라고 하기엔 좀 쑥스럽지만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도 고향의 동창들은 국민학교 때 생긴 마통닭 또는 줄여서 마통이라는 별명으로 나를 부른다. 아마 급식 시간에 내가 엄청난 치킨 사랑을 보여줬었던지 아니면 평소에 치킨 애찬 하는 날 보며 누군가 붙이면서 생긴 별명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별명이 통닭일 정도로 나는 치킨을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요즘은 밥, 국, 치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치킨은 온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주, 그리고 흔히 먹는 음식이 됐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인 1990년대의 강원도 화천이라는 산골 마을에서의 치킨은 자장면만큼이나 (내게는) 귀한 음식이었고 자주 먹을 수도 없던 별미이자 특식이었다. 그래서 난 그 특식을 먹기 위해 항상 아빠의 월급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며 아빠 엄마에게 치킨을 사달라고 졸라서 행복해하며 먹곤 했던 추억이 있다.
국민학교 2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어김없이 아빠의 월급날이 돌아왔기에 저녁 타이밍에 맞추어 몸을 베베꼬고 헤헤 거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아빠 월급날이지? 오늘은 양념 통닭 먹어요! 아빠 월급날이라서 돈 많은 날이 잖아요”. 몇 날 며칠 동안 아빠의 월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고, 항상 이맘 때면 빠듯한 살림에도 시원하게 양념 통닭을 사주셨기에 당연히 가게에 전화를 걸어 주문하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오늘은 안 돼. 다음에 사 줄게.”라고 단칼에 내 부탁을 거절하셨다.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을 더 졸랐다. 하지만 애교와 땡강은 통하지 않았다. 엄마는 단호하셨고 작전에 실패한 나는 입이 댓 발 나왔다. 한껏 삐친 척을 해도 소용이 없길래 결국 포기하고 터벅터벅 방에 들어가 이불속으로 숨어 버렸다.
얼마 후에 아빠가 퇴근하시고 집에 들어오셨다. 나는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아빠가 오신 것을 확인했다. 아빠가 오면 엄마가 마음을 바꿔서 사주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엄마는 아빠에게 쿡쿡 웃으시며 아들 녀석이 통닭을 안 사주는 바람에 삐쳐서 방에 들어가 누워 있다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웃음소리를 듣고는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치킨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설레었고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에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이불속에 토라져 누워 있는 척하는 내게 통닭을 시킬 건데 먹을 건지 말 건지를 물어보셨다. 계획이 잘 풀리고 있으니 이불을 뛰쳐나와서 깡총 뛰며 ‘먹을래요!’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까 삐친 감정이 남아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안 먹을래요.”하는 대답이 퉁명스럽게 튀어나와 버렸다.
엄마는 두어 번을 더 물으셨지만 난 이불을 더 끌어당기며 잔뜩 토라진 목소리로 “안 먹을래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엄마는 “그래, 그럼 먹지 말고 누운 김에 오늘은 일찍 자. 효진이랑 아빠랑 우리 셋만 먹을게”라고 말씀하시고는 방문을 닫으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간절히 바라던 처갓집 양념 통닭이 배달 왔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 동생의 ‘맛있겠다!’ 하고 크게 외치는 소리가 닫힌 방 문을 뚫고 들어와 귀에 꽂혔다. 갑자기 더 서글퍼져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할 땐 안 사주더니. 그리고 난 또 왜 안 먹겠다고 대답을 한 것일까. 좌절하며 서러움에 훌쩍이고 있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우리 충렬이 좋아하는 통닭 왔어요. 효진이가 다 먹기 전에 얼른 일어나세요.” 지금까지 버팅긴 것도 있고 어떻게 감정을 조절하고 나갈지 몰라서 내적 갈등에 빠져 있을 때 엄마가 이번엔 이불을 들추고 싱긋 웃으시며 내 얼굴 앞으로 닭다리를 들이 미셨다.
결정타였다. 지금까지 삐쳐 있던 감정은 한 움큼 베어 문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사르르 녹아 버렸다. 웃을 생각은 없었는데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멈춰 버린 눈물을 닦고 방긋 웃으며 “먹을래요!”하고 벌떡 일어나 닭다리를 들고 있는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귀여워하시며 울다 웃으면 똥꾸멍에 털이 난다고 놀리셨다. 나는 헤헤 웃으며 거실로 뛰쳐나와 그제야 아빠를 끌어 안아 인사를 하고 곧바로 양념 통닭에 손을 뻗었다. 손과 얼굴에는 잔뜩 양념이 묻었고 행복했던 그 순간은 마음에 소중한 추억으로 담겼다.
공원에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9시 즈음, 치킨으로 야식을 먹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배달의 민족 어플을 열어서 어떤 치킨집이 있고 어떤 메뉴가 있는지 입맛을 다셔가며 꼼꼼하게 살펴본다. 온 동네의 치킨집과 메뉴를 다 살펴보고 난 후에는 눈을 질끈 감고 먹고 싶지 않다는 주문을 외우며 어플을 종료한다.
치킨 한 마리 시켜먹기가 너무 부담이 돼서.
장사가 안 되는 날엔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매출이 5만 원도 안 되는 날이 있다. 그보다 좀 더 잘 된다고 해도 10만 원 수준을 웃도는 날이 허다하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장사를 아예 할 수 없는 날도 많다. 미세 먼지나 황사가 심한 날, 비가 많이 오거나 여름 장마철에는 장사하기 힘든 건 둘째치고 일단 사람이 없다. 추운 한 겨울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장사를 하는 게 오히려 손해다. 괜히 발전기 기름 값만 축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매출이 잘 나오는, 소위 장사 좀 되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또 그러다 보니 장사가 잘 될 때 번 돈은 장사가 안 되는 때 고스란히 메워지게 된다. 결국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그래서 치킨을 사 먹기 위해서는 월세, 전기세, 가스비, 관리비, 통신비, 학자금, 대출금 등등을 다 고려해 봐야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치킨 생각은 접어야 하는 게 맞다.
돈이 없으니,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니,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
배달 어플을 종료하며 치킨 한 마리도 마음 편히 사 먹을 수 없는 내 처지가 그렇게 초라하고 비참해 보일 수 없었다. 짜증이 났고 우울해졌다. 자존심도 상하고 삶의 의욕은 더 내려갈 곳도 없는 것 같은데 자꾸만 바닥 깊숙이 꺼져갔다. 치킨 한 마리 사 먹는 걸 사치라고 여겨야 하는 궁핍한 삶이 못마땅했다. 왜 일찍이 성공가도에 뜻을 두고 살지 못했었는지,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그렇게 울적해져 있을 때 아빠의 월급 날을 기다리며 엄마에게 통닭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손과 얼굴에 양념을 잔뜩 묻혀가며 행복한 저녁을 했던 순간이 아닌, 그때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이 떠오른 거다. 빠듯한 가정 경제 때문에 아들 녀석이 통닭 한 마리 사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사주지 못하셨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그제야 엄마를 향한 측은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식 없는 나도 사는 게 이렇게 힘든 데 두 아이와 철없는 아빠를 키워야 했던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처럼 돈에 쫓겨 사는 삶 때문에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극단적인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 아내에겐 내가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딱히 내색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런 우울한 생각까진 몰랐을 거다. 희비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긴 해도 속마음을 숨기고 감추고 싶은 감정은 꼭꼭 숨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몰랐을 거다. 빚이라곤 학자금 100만 원도 채 안 남은 아내에게 터무니없는 내 부채를 같이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 빚을 다 갚기 전까진 월급을 따로 관리하기로 했던지라, 아내는 몰랐을 거다. 아내에겐 벌이가 좋다고만 얘기했기 때문에, 잘 해내가는 줄만 알았을 거다.
창업자금 대출 1년 거치기간이 끝나자 3개월에 한 번씩 약 350만의 대출금을 상환해야 했다. 매출이 평균 수준을 꾸준히만 유지해주었더라면 대출금이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을 텐데. 장사가 안 되는 날도 장사를 할 수 없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대출금을 내야 하는 달은 눈 앞이 깜깜했다. 혼자서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아내에게 부탁을 하기로 했다. 벌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 번에 나가는 대출금이 많아서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몇 달 안에 갚을 테니 잠깐만 빌려 달라고. 하지만 결국 아내에게 빌린 돈은 돌려주지 못했다. 능력 없고 못난 남편 만나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부채로 쌓여갔다.
내 목소리만 들어도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엄마는 기운 없는 내 목소리를 듣고 아내 몰래 용돈을 챙겨주기도 했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이제는 용돈도 드릴 수 있는 아들이고 싶었다. 반도체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밤 9시부터 아침 6시까지 야간 근무를 하시는 일도 그만두게 해 드리고 싶었다. 다른 50대 후반의 엄마들처럼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집에서 쉬는 일상을 안겨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만큼은 용돈도 받기 싫었고 손도 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말 따위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장성한 자식에게 용돈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용돈을 주고 있는 엄마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언젠가는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래서 아내와 엄마에게 두둑이 용돈도 주고 남편을, 자식을, 마음껏 자랑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어디 가서 욕하고 부끄러워해도 할 말 없는 처지였다. 나는 모두의 수고와 땀을 그저 좀 먹는 벌레 같은, 기생충 같은 인간이라 여겨졌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니 더 이상 살아가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살아 숨 쉬는 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어제의 하루를 살아낸 것도 힘들었다.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것도 벅차다. 그런데 내일 하루를 또 살아내야 한다는 현실이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끔찍했다. 더 이상 하루를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소중한 아내와 엄마와 동생을 볼 낯도 없었다. 무력하고 못난 나는 그냥 죽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책임한 말이고 모두에게 미안하 얘기지만.....
이 우울감과 절망의 늪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여기서 끝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만
되뇔 뿐이었다.
삶이 끝나버리길 바라면서도 기도는 했다. 아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비루하고 나약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밖엔 없었다. 퇴근 후 아무렇지 않은 척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아내가 잠들면 기도를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께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발악하듯 기도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기에,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걸 믿는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내버려 두는 건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로또 1등 당첨 같은 기적을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브레이크 없이 최악으로 매일 곤두박질치는 나를 이렇게 외면하시면 더 이상 하루를 살아낼 자신이 없어요. 숨 돌릴 틈이라도 주셨으면 좋겠어요. 왜 내 노력들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채 헛짓거리가 되어야 하는 건가요. 왜 내 상황은 나아질 수 없는 건가요. 지금껏 살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도 제가 언제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말한 적 있나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요. 이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몇 날 며칠 몇 달을 그렇게 절망의 한숨을 내쉬며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기도를 멈추었다. 그리고 혹시 하나님의 침묵이 응답의 사인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은 정말 나를 외면하고 내버려 두고 계신가? 정말? 혹시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문제와 상황에만 매몰되어서 항상 내게 머무는 은혜를 외면하고 있던 건 아닐까? 응답하지 않은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아닐까? 내 상황과 문제를 제쳐두고 마주하게 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지?
그러자 타이밍 좋게 성경말씀들이 머릿속에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저 신약성경 마가복음 4장의 내용이 마음으로 내려앉았다.
날이 저물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나룻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느닷없이 거센 바람이 일어났고 파도가 쳐서 배에 물이 가득 들어와 배가 전복될지도 모르는 급박한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께 원망 가득한 말투로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으십니까!”라며 깨워 일으킨다. 잠에서 깬 예수님은 일어나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에게 “고요하고, 잠잠하여라”는 말씀으로 상황을 순식간에 정리하신다. 그런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 마가복음 4장 36 - 41 (새번역) -
죽음을 소망하며 불안으로 요동하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꼭 감은 두 눈에선 눈물이 새어 나왔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예수님을 내 삶에서 떨어트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 그리고 삶의 역경 가운데에서도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그래서 그동안의 순탄치 않은 삶도 견딜 수 있었고 헤쳐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방황하던 청소년기에 마음을 정하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돈에 쫓기는 삶’이라는 파도가 치게 되면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며 내가 항상 의지하던 분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앙생활 정말 허투루 했구만이라는 탄식이 내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분은 바람도 꾸짖고 바다도 잠잠케 하시는 분이신데 말이다. 마가복음 4장의 예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왜 무서워하니? 아직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거니?”라고.
다음으로 마음에 찾아온 성경 말씀은 구약성경 출애굽기 16장의 내용이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막상 광야로 나오니 노예 신분일 때는 그럭저럭 먹고는 살았지만 여기서는 굶어 죽게 생겼다며 무리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하나님이 이 원망을 들으시곤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서 고기를 먹게 하시고, 아침엔 하늘에서 만나(꿀 맛 나는 과자)를 비처럼 내리게 해서 빵을 만들어 먹게 하신다. 단, 하나님께서 그날 주신 음식은 그날만 먹을 수 있었다. 욕심을 부려 더 쟁여두어도 다음 날에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나서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매일의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분이 그들의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된다.
- 출애굽기 16장 1 - 30 (새번역) -
그러고 보니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매일 새로운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늘 부족하고 모자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가진 것이 없는 날은 없었다. 내게 없는 것은 내일의 양식이지 오늘의 양식이 아니었다. 그래, 맞아. 나는 그날그날 살아갈 감사한 일용할 양식으로 매일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허락된 양식에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한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양식이 새롭게 주어질 텐데. 오늘 내일의 양식들을 걱정하다 보니 오늘 주어진 감사한 것들마저 내 마음속에서 전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이 두 말씀을 묵상한 후에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제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내일의 걱정으로
오늘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저를 외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폭풍 중에도 저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 삶을 침범하고 전복시키려는
눈 앞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폭풍과 바다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 제 힘으로 이겨내려다보니
힘에 부쳐 어느샌가 죽음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믿음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언제나 함께 하시며 필요한 것을 채우시고
굶지 않게 먹이시고 삶을 붙드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으로 살게 해 주세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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