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보다는 이해를
철이 든다는 것은 그저 자기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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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 아들이라 하면 ‘엄친아’로 대표되는 완벽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 내 엄마 친구 아들 중에는 그와는 정반대인 P라는 녀석이 있다. 명문대를 나왔는데도 일은 안 하고 맨날 놀 생각만 하며, 큰 회사를 물려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여서 엄마들 사이에서 문제아로 알려져 있다.
우리 엄마에게 P는 한심한 친구 아들 이상의 걱정거리인데, 내 남동생과 P가 친하게 지내는 것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도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P의 이야기와 함께 “너 언제 철들래?” 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평소에는 그냥 가만히 있던 동생이 이번에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P나 내가 남들에게 모범이 될만한 삶을 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평소 엄마의 잔소리가 익숙한 가족 분위기 속에서 저 말은 생경하게 느껴졌고, 엄마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동생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헛바람이 든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나 목표 없는 듯한 모습이 못마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곧 삶을 망치는 행동이거나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고, 또 동생이 반드시 남들 눈에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사실 엄마의 눈에 동생은 아직 미완성이고, P 같은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이 더 불안하게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잔소리와 꾸지람으로 동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화제를 돌렸다. 더 이상 말해 봤자 분란이 일어나거나 생각의 차이만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답답해 보였지만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으셨다.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은 동생의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엄마의 생각이 좋긴 하지만 동생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나도 막연하게 동생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으나, 동생과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고, 삶의 방식이 다를 뿐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돌아와 동생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해 보니, 정말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가 갔지만, 동생이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믿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삶의 속도는 누구나 달라서 누군가는 청년 시절을 치열하게 살다가 중년에 방황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초년에는 방황하다가 후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동생이 지금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의 삶의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인정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철이 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철이 든다는 것은 그저 자기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책임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렇게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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