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질문, 무거운 마음
남이 나에게 하는 신경 쓰이는 말들은 대부분 별생각 없이 던지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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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이던 시절에 자주 마주치던 동네 아주머니가 있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완벽한 분이었다. 특히 놀라운 점은 그 아주머니가 기억력과 분석력이 탁월한 데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문제들도 다 기억하여 그런 것들을 면전에서 물어보거나 평가하더라도 상대가 화내지 않도록 하는 탁월한 능력 말이다.
완벽한 그 아주머니에게도 한 가지 취약한 부분이 있었는데, 정작 상대방이 답변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분은 “결혼 안 해? 만나는 사람 있어?”, “회사 요즘 어렵다며 괜찮아?”, “취업 어렵다는데 준비 잘하고 있어?” 등의 질문을 즐겨했는데, 질문에 상대가 뭐라 답을 하건 간에 다음에 만나면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하곤 했다. 매번 처음인 것처럼 질문을 하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분이 미혼이던 내게도 늘 하는 질문이 있었다. “결혼 안 하니? 만나는 사람은 있고?” 뭐 이런 뻔한 질문이다. 한 달 만에 만나건, 일주일 만에 만나건, 심지어 불과 이틀 전에 같은 질문을 해놓고도 또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약 2년 정도에 걸쳐 100번은 족히 그 질문을 들은 것 같다. 아직 없다고 대답을 하면 늘 반응도 똑같았다. “아이구 저런, 이제 결혼해야지. 부모님 속상하시겠다.”
그러던 중, 아주 기분이 나빴던 어느 날,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져오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짜증을 내고 말았다. “지난주에도 물어보셨고 그전에도 수십 번은 물어보셨잖아요(100번 넘는 것 같은데 좀 줄여 말했다). 지금까지 계속 없었는데 오늘 갑자기 일주일 만에 결혼할 사람이 생겼겠어요?” 다행히 그 이후로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일 없이 서로 어색한 인사만 하고 지나가게 되었다.
내가 오늘 저 아주머니를 떠올린 이유는 저런 상황을 또다시 겪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내가 피해자가 아닌 바로 저 아주머니의 입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내 팀의 팀원에게 가끔씩 “ㅇㅇ씨 공부 잘하고 있어?”라고 인사처럼 물어봤었는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아니요. 그냥 포기하려구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길래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니 왜? 기왕에 시작한 거 더 해보지 그래?”라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대체 내가 왜 그랬던 걸까 후회가 밀려왔다.
평소에 내가 그 팀원이 시험을 보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신경 쓴 적이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시험을 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로 지내다가 가끔씩 별생각 없이, 그저 지나가듯 시험 준비 잘 되고 있냐고 물었을 뿐이다.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켜 보자면 남들이 내게 던지는 신경 쓰이는 말들 역시 상당 부분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일 것이다. 저 아주머니가 불과 일주일 만에 내게 결혼할 사람이 생겼을지 궁금해서 같은 질문을 했을까? 그럴 리 없다. 나의 결혼이 아주머니에겐 자신이 모기에 물린 것보다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주머니의 반복된 질문은 내가 짜증을 낼 가치도 없었던 일인 것 같다.
그 아주머니는 그냥 남을 좀 곤란하게 만들어 반응을 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만족감을 얻었던 것 같다. 글로 적어보니 상당히 유치해 보이지만 인간은 다들 유치한 존재이니 뭐 그럴 수도 있다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의 내 행동 역시 이와 다를 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 직원이 내가 한 말을 두고 불쾌해 하기보다는 ‘기분 나빠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며 남의 일이니 별 관심도 없을 거야’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 직원을 보면서 하루종일 내 마음도 불편하지만, 이것 역시 며칠 못 가서 잊혀지겠지.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
1. Flames, 2. "The Office", © NBCUnivers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