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nothing Sep 05. 2022

초콜릿 사건의 전말

초단편 소설


사건의 시작은 작은 초콜릿 때문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이른 아침에도 스산한 기운이 맴돌던 어느 아침, 동방에 모인 사람은 넷이었다. 밤샘 작업을 마치고 라꾸라꾸 침대에 몸을 뉜 A, 새벽까지 술을 처먹으시고 학교 앞 자취방이 있음에도 왜 왔는지 모를 선배 B, 두꺼운 전공 책을 아이 다루듯 품 안에 꼭 안고 들어선 C, 그 애가 동방에서 못다 한 과제를 하다 오전 강의를 들어갈 거라는 첩보를 입수해 헐레벌떡 등교한 나까지.


머리도 감지 못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왔건만 삼십 분이 지나도록 그 아이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후드 집업 속 비타민 음료가 점점 미지근해지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 정보원에게 연락했다.


[걔 동방에 없는데. 거짓부렁이었냐?]

[아니. 일곱 시쯤 동방 이랬는데. 쭉 거기에 있을 거랬음]


지금은 AM 8시 30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쭉 한 바퀴 살펴보았다. A는 고롱고롱 코까지 골고 있는 게 잠이 든 지 한참이 지난 것 같다. 그리고 소파 위로 구겨져 있는, 아이 씨팔 더러운 새끼. 언제 적부터 있었는지 모를 걸레인지 수건인지로 젖은 크록스에서 제 발을 꺼내 발가락 사이사이를 닦고 있는 선배 B. 저런 새끼가 과 수석이라니. 대한민국의 앞날이 캄캄하다. 비단 저런 더러운 행동 때문만이 아니다.


술고래에다가 어찌나 참견을 좋아하는지 여기저기 모든 술자리에 기웃대는 건 기본이요, 그 애에게 주려고 산 자그마치 만 원짜리 숙취 해소 음료를 내 주머니에서 빼꼼 나온 것을 어찌 보고 자기 주려고 샀냐며 홀랑 가져가 버리질 않나. 표정이 썩어있으니 설마 다른 사람 거냐며 그 애를 흘깃대는 만행까지. 저 봐. 발가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손가락을 닦지도 않고 휴대폰을 두드려대는 거 봐. 으으. 저 메시지를 받는 사람도 참 불쌍하다.


다음으로 C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흠칫 놀라며 안경 속 눈알을 데구루루 굴려댔다. 쟤는 저렇게 소심해서 이 각박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암튼 C는 방금 들어왔으니 용의 선상에서 제외다.


그 애의 행방을 아는 자는 누구일까.


어라. 음료수 캔과 과자 봉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테이블 아래로 익숙한 가방이 보인다. 커다란 검은색 백팩에 저를 닮은 흰 토끼 인형이 달랑거리는 것이 그 아이의 가방이다. 나는 테이블로 다가가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살짝 열린 백팩 앞주머니에서 무언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빨간색 하트 모양의 상자와 열린 틈으로 물방울 모양을 금박으로 감싼 작은 초콜릿들이 쏟아졌다. 평소에 젤리 따위를 먹는 것은 많이 보았는데 초콜릿도 좋아했었나. 그나저나 도대체 누가 준거지.


초콜릿들을 상자에 주워 담다가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허업. 으아악! 자세히 보니 초콜릿을 둘러싼 금박지에 진한 갈색의 물방울 모양이 사선으로 점점이 프린팅 되어있었다. 그 아이의 초콜릿은 아무 무늬가 없는 금박이어야 한다. 물방울 모양이 그려진 금박지는 키세스 크리미 밀크 아몬드다! 키세스 크리미 밀크가 아니란 말이다! 어떤 멍청한 놈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알레르기 유무도 모를 수가 있는지.


빨간색 하트 상자를 들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초콜릿을 먹고 호흡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래서 병원을 간 것일까. 무심코 본 바닥에 구겨진 금박지가 보였다. 몇 걸음 걸어가 콩알만 하게 뭉쳐진 금박지를 들어 올리니 저 앞에 또 다른 금박지의 흔적이 보였다. 나는 헨젤과 그레텔에 빙의하여 금박지의 행방을 쫓았다. 동아리실 안쪽에는 작은 쪽문으로 된 창고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부러진 의자나 축제 때 쓰고 남은 현수막과 잡다한 물품들이 쌓여있는 곳이었다.


쪽문 앞까지 다다르니 쪼그라든 금박지 여러 개가 흩어져있었다. 꼭 누가 가져다 놓은 것처럼. 기분 나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쪽문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어두운 창고에 슬그머니 빛이 들어서자 바로 눈앞에 하얀 매트리스 위에 사람의 발이 보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곤 늘어져 있는 사람의 곁으로 가 앉아 얼굴을 들여다봤다. 헉. 그 애가 맞았다.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더니 옅은 숨을 쉬고 있었는데 입가에 허옇게 말라붙어 있는 것을 보니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토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머릿속이 새 하얘졌다.


"너 거기서 뭐하냐"

".......... 빨리 구급차 불러"

"뭐? 너 미쳤냐? 갑자기 웬 반말"

"빨리 부르라고!!!!! 얘 숨 못 쉬는 거 안 보여??"


B가 뭐 재미난 구경을 하듯 묻는 것에 잔뜩 열이 올라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도대체가 사람이 맞는 건지, 쓰러져있는 그 애를 보고서도 태연한 선배 새끼의 행동에 미친 듯이 화가 났다. 내 소리에 놀랐는지 A와 C가 창고로 후다닥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멀뚱멀뚱 보고 있는 세 쌍의 눈 들에 기가 막혔다. 아니, 다들 미친 거야? 나는 소파 위에 놔둔 휴대폰을 가져오려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 선배 새끼가 내 팔목을 붙들었다. 쉬이- 진정해, 잠시 진정 좀 해봐. 한 손은 내 팔목을 붙들고 다른 손으로는 개를 조련하듯 넓게 핀 손을 내 가슴 앞에 가져다 대며 개소리를 해댔다.


너무 황당해 말이 나오지 않아 눈을 빠르게 굴려대며 셋의 얼굴을 훑었다. 다들 입술 옆에 짙은 갈색의 자국이 묻어있었다. 흡사 키세스 크리미 밀크 아몬드를 계속 까먹다가 눅진이 녹은 초콜릿이 입에 묻은 지 모르고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이런 씨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모두 한 통속이었던 것이다. 이제 막 23살이 된 대학생을 음해해서 얻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빨리 데리고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너무 혼란스러워 혼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때 창고의 불이 탁 켜졌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신우 생일 축하합니다~ ♫



뒤를 돌아보니 머리가 산발이 된 그 아이가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퉁퉁부은 얼굴 위로 눈이 채 떠지지도 않은 채. 디딛는 발걸음도 이상하다. 왜 저리 휘청대는 거야?


"신우야, 생일 축하해. 내 선물을 어떻게 알고 벌써 들고 있어?"


휘청거리며 내 앞에 선 그 아이에게 짙은 알코올 향이 훅 끼쳐왔다. 한 손으로 제 입을 슥슥 닦으며 히죽 웃는 그 아이와 상자를 번갈아 보다 내 손에 들려있는 상자를 열었다. 키세스 크리미 밀크 아몬드 초콜릿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새벽 AM 1시. 학교 앞 주점에는 혀가 꼬부라져 발음이 죽죽 새어 나오는 민영이와 선배가 맥주를 꼴깍꼴깍 넘기고 있었다.


"후.... 선배... 나 너무 탑탑해에.. 시누 그 자식이... 그 씨팔 새끼가악! 눈치는 조또 없숴!"

"네가 먼저 고백하면 되잖아"

"선배, 선배도 알차나... 그 좌식 졸라 소심한 거... 저 놀리는 줄 알코.. 도망갈꺼얼.."

"아, 내일 신우 생일이던데. 말로 하지 말고 물건으로 해. 초콜릿 같은 거. 초콜릿이 널 사랑해라는 뜻 이래. 그리고 걔 맨날 똑같은 초콜릿 사 먹던데. 키세스? 꼭지 달린 거 있잖아. 아몬드 들은 거"

"앗, 선배 진쫘 천재 아냐? 그런데에 시누에 대해서 왜 그러케 많이 알아?"

"낼 신우 스케줄 알아볼게. 애들 몇 명 더 모아야겠다"

"아니, 왜 이렇게 잘 아냐고요!"


결국 밤을 새워가며 술은 마신 민영은 케이크와 함께 창고에 숨어있다가 잠들어 버렸다. 술에 취해 초콜릿을 몇 봉을 산 건지 상자에 다 들어가고도 남은 초콜릿들을 술 취한 민영을 빼고 모두가 까먹었다. 흔적을 치운다고 대강 발길이 닿지 않는 창고 쪽으로 쓸어버리고선. 테이블 위에 초콜릿 봉지가 나뒹구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선배에게 포섭된 사람은 신우가 동방에 들어서면 신호를 줄 C와 신우의 정보원이다. A는 진짜 밤샘 작업을 하고 온 선량한 시민이었다.


초콜릿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막 사랑이 싹튼 둘의 풋풋한 러브 스토리. 그리고 짝사랑을 하는 한 사람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

매거진의 이전글 괴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