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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Mar 26. 2023

영원히 함께

집에 화분을 들여놓았다.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해 축축한 흙만이 가득 담겨있다. 화분에는 채송화 씨앗을 심어 놓았는데, 일 년생 화초이지만 씨가 떨어져 해마다 싹을 틔운다고 한다. 물과 햇볕만 있으면 쑥쑥 잘 자란다는, 부단한 노력 없이도 결실을 이룬다는 꽃을 선택했다. 아침에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는데 아직 초록의 싹은 보이지 않는다. 물을 충분히 부었다. 폭포 같은 물줄기에 화분의 흙이 살짝 파였다. 네가 비어져 나온다.


그날도 심상찮은 빗줄기에 땅의 진흙이 종아리에 척척하게 달라붙는 날이었다. 까무룩 잠든 오수 중 네가 내 볼기짝을 마구 때리는 통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방안에는 침침한 어스름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들이친 빗방울에 얼굴이 젖어있었다.


우산을 들고 익숙한 방향으로 걸었다. 오래되어 삭은 우산은 비가 샜고 차가운 봄밤의 맨발은 시렸지만 종아리에 들러붙는 흙들이, 뺨 어귀를 흐르는 빗줄기들이 어쩐지 장난스러운 어린아이의 손놀림 같이 느껴졌다.


비에 젖은 손가락이 도어록 위를 매끈하게 연주하자 포근한 기운이 날 감쌌다. 어느덧 사십구 일이 되었다. 너희 어머니가 눈에 담기 몹시 아파 꽁꽁 숨겨두었을 네가, 예쁜 보자기를 입고 우뚝 서있다. 하얀 도자기에 담긴 네가 갑갑해 보였다. 은빛 보자기를 풀고 도자기 안의 하얀 네 일부를 지퍼백에 넣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너를 심었다.



꿈속에서 보랏빛을 띤 해파리와 심해를 헤엄치고 있었다. 투명하고 기다란 촉수가 날 어루만지더니 여러 가닥이 내 몸을 휘감았다. 미끄덩하고 퐁실퐁실한 해파리가 가슴에 닿았고 나는 살가죽과 뼈, 심장 순으로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한데 뒤엉켜 녹아들고 러내려 바다가 되었다.


여전히 괴로운 아침이 되었다. 아침마다 난 젖 흐물거렸는데 오늘은 침대를 딛고 일어서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열린 창문사이로 들이닥치는 오랜만의 햇살에 완연한 봄이 실감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작은 머그컵에 물을 받아 베란다로 나갔다. 화분에 아주 작은 싹이 돋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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