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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Mar 27. 2023

전시 (展示)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밥을 해 먹고 강아지와 산책을 갑니다. 녀석은 추정 여덟 살로 사람으로 따지자면 예순이 훌쩍 넘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인으로 취급되었던 나이지요. 녀석은 재작년 즈음 보호소에서 데려왔는데 당시에는 짤똥한 주둥이와 커다란 눈망울에 속아 생후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어린 강아지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불쌍한 것을 작은 케이지에 가둬놓고 똥이고 오물이 고를 매단 채 최장 열나흘을 눅눅한 사료와 오줌이 섞인 물로 연명하다, 인도적인 안락사를 한다고 하지만 열악한 보호소 사정에 락스를 탄 물을 먹여 죽일지 아사로 죽게 내버려 둘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계획에도 없는 노견을 데려왔고 어느새 저와 동갑이 되었습니다.


저는 불쌍한 것들을 보면 가슴이 몹시 아픕니다. 아무리 세상 천치 같은 사람들도 여리고 불쌍한 것을 보면 애잔하여 콧등이 시큰해지는 거야 당연하지만서도, 저는 그러한 시큰을 넘어서 통탄스러워 심장이 조이는 듯한 통증이 생깁니다. 아마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비애와 설움에 예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산책을 하는 이가 한 명 더 늘었습니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조카인데 얼마 전부터 저희 집에서 머물고 있지요. 오래간만에 얼굴을 마주했을 때, 녀석의 낯빛은 거무죽죽하니 퀭하였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습니다.  안광이 꺼진 흐리멍덩한 눈으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저만의 상념 속에 잠긴 것 같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 집에 가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니. 산책도 하고 밥도 많이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여기보다 나을 거야.


녀석들은 말이 없습니다. 산책 시간에 입을 여는 것은 저 하나밖에 없지요. 축 늘어진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부단히 입술을 달싹입니다. 꽃과 나무의 푸르름을 찬양하고 거리의 사람들의 부지런함에 감탄하고 또는 헐벗은 옷차림과 단정치 못한 머리 색깔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스물다섯이란 나이는 얇은 기름종이 마냥 적시면 적시는 대로 더러운 폐기름에 속속들이 물들기도 하니까요.


녀석의 짐을 풀어 검은 옷을 죄다 버렸습니다.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만 봐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검고 칙칙한 것만 소유하려 합니다. 검은 옷을 버리다 보니 가방에 조제약들이 한아름 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기절초풍할만하게 가지각색의 약들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돌돌 말려있었습니다. 올타쿠나! 녀석의 눈이 곧 생사를 가르는 환자같이 멍텅 했던 이유를 찾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힘이 들면 약을 타 먹는다고 하던데 녀석도 그러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우울하고 비통한 심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그러했습니다. 애아빠가 갑작스러운 빗길의 사고로 먼저 떠났을 때,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잘하던 공부를 때려치우고 음악인지 딴따라인지를 하겠다고 식음을 전폐했을 때, 세상의 심해 바닥으로 기어들어가 무수한 공포와 슬픔과 침통에 빠져 마른 가슴을 벅벅 긁어대었지요. 그러함에도 저는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 악착같이 애를 키워냈고 딸의 힘아리 없는 주먹에 펜을 다시 들려줬습니다. 모든 것은 정신력입니다. 의지입니다. 정신을 물에 풀어놓은 휴지 조각처럼 축축하고 흐물거리게 만드는 약이라니요. 결코 좋을 것이 없습니다. 의료계의 상술이나 다름없습니다.


녀석의 검은 옷과 약들을 모두 버리고 노란 원피스를 입혔습니다. 노란색은 희망과 행복의 색이라고 하지요. 저녁엔 저의 친구들을 모두 불러 식사를 했습니다. 녀석을 가운데에 앉혀놓고 녀석의 부모가 어렸을 적 이혼하여 잘 돌보지 못해 가끔 도움을 주었던 일, 대학에 여러 번 떨어져 상심했던 일, 진학을 포기하고 이윽고 들어갔던 회사에서 몹쓸 일을 당했던 일들을 공유하며 녀석의 아픔을 모두가 나누어 가졌습니다. 녀석의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누어 가지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녀석은 어제저녁의 식사시간에도, 지금의 산책 시간에도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벚꽃 나무 앞에 세워놓고 강아지를 안겨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입꼬리를 조금만 올리면 예쁠 텐데 안타깝습니다. 표정이 없는 녀석은 강아지가 무거운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네요.


녀석들의 사진을 친구들의 단체방에 보냈습니다. 친구 중 한 명이 녀석의 머리카락이 너무 치렁치렁하다며 어깨 위까지 자르면 숙녀 같을 것 같다고 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미용실을 가야겠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이상합니다. 강아지가 폴짝 뛰어 내려와 녀석의 발에 실례를 하는데도 강아지가 안겨있던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굽힌 팔을 펴주려고 주무르는데 따뜻하고 말랑거려야 할 살이 차갑고 딱딱합니다. 눈꺼풀도 닫히지 않고 굳은 입매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인형처럼요.


하는 수 없이 급히 친구에게 휠체어를 부탁했습니다. 친구가 수소문하여 사온 휠체어에 녀석을 앉히고 강아지를 무릎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때 돌개바람이 휘몰아치며 벚꽃나무의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희고 분홍빛을 띤 벚꽃들과 노란 원피스의 녀석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휠체어는 고급스러운 왕좌 같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휴대폰의 셔터를 마구 눌렀습니다. 사진을 몇 번이고 보다가 프로필 사진에 게시하였습니다.


친구들에게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녀석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며 녀석을 무저갱에서 구출한 저를 칭찬합니다. 부끄럽지만 겸손할 것도 없습니다. 선행은 모두에게 알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사회 전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저는 이만 조카와 함께 미용실을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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