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요의 방에서 소주를 들이켜는 외로운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거실의 식탁을 놔두고 앉은뱅이 식탁에 쪼그라든 엄마. 파란 티브이 불빛만 내려앉은 암흑 속 엄마는 점점 쪼그라들어서 방바닥의 낡은 장판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쪼그라들고 물크러져 검은 폐수로 고이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엄마가 앉은 방이 쪼그라들고 집도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나는 쪼그라들고 싶지 않았다. 두꺼운 철문을 박차고 나갔다.
집 밖도 어둠뿐이었다. 하늘에 손이 닿을 리가 없는데 하늘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쭉 뻗은 손가락 끝이 물컹거리는 하늘과 닿을 듯했다. 낮아지는 하늘을 벗어나려 뜀박질을 했다. 주먹을 쥐고 발을 세차게 굴러보았지만 낮아지는 하늘을 빠져나가기란 녹록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납작해지고 있었다. 거친 아스팔트에 달라붙어 이윽고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때에 우리는 쪼그라들고 가로막히고 구부러지고 압축되고 부스러졌다. 과거의 흩어진 잔상은 불현듯 피어오른다.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든 그날의 연기는 쓰고 매캐하고 지독하다. 내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쪼그라든 엄마를 붙들고 같이 쪼그라들었으면, 구겨진 우리를 빳빳하게 펼치기 수월했을까.
환기되지 않은 매연은 혈관 속 깊숙이 스며들어 순환한다. 나는 그을음이다. 희어지기 위해 자꾸 그날로 되돌아가는 그을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