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시작하기에 앞서
평점 : 8 /10
한줄평 : 혼란스럽도록 이해안되는 사건들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체가 어우러진 프레임이란 인생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어떻게 영화(삶)를 관람할 것인가.
삶에서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방향도 우리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다.
* 해당 후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있다.
내 (마히토)가 의도하지 않았던 선택 (이사, 전쟁, 후계자),
의도했던 선택 (불타는 병원으로 뛰어간 것, 일부로 머리에 상처를 낸 것, 나츠코를 찾으러 탑에 들어간 것)
선택으로 인한 변화,
선택으로 인한 결과,
그리고 과거 (히미)와 미래 (나츠코)를 관통하는 현재 (마히토)의 선택까지.
수많은 선택들은 삶을 만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방향)는 우리의 선택 그 자체를 의미한다.
유려한 그림체 속에 흐드러진 수많은 플롯들은 무궁무진하고 불확실한 인생을,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처음 영화를 볼 때, 나는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과성을 찾으려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영화의 의미들이 문득 진하게 다가왔다.
내 인생도 그랬다.
사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모든 일들에서 인과 관계를 찾으려 애썼고,
지나가보니 이러한 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영화를 보고 혼란스러웠다면, 그것이 곧 여러분이 살아가는 인생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감흥을 느꼈다면, 그것 또한 곧 우리가 삶에서 느꼈을 감정일 것이다.
상실과 부재를 겪을 때, 굴곡진 삶의 파도를 느끼곤 한다.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 마히토는 극 초반 상실에 괴로워한다.
애도하는 방법조차 미숙했던 주인공은,
상실과 부재의 현실을 외면하고,
마주할 미래에 저항하며 (새엄마 나츠코, 학교 생활 적응),
자신을 상처 내며 세상을 향한 순수한 악의를 표출한다.
이토록 어린 마음은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것이다.
세상을 탓하고,
현실을 회피하고,
그 화살을 오롯이 나 자신에게 돌리곤 한다.
동기부여나 힐링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한 이상주의자들 (할아버지)의 메신저 (왜가리)를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에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그들이 내민 달콤한 유혹 (엄마가 살아있다는 거짓말)을 확인하기 전까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마히토는 과거를 마주하고 나서야 (엄마가 남긴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상실의 상처를 온전히 느끼게 된다.
그가 흘린 눈물은 방어 기제뿐이었던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미래 (탑으로 간 나츠코의 구출)를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슬픔을 충분히 애도하고 나서야,
이상주의자들의 메세지를 적의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외려 그들이 전하는 말속의 핵심 (왜가리의 털)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새로운 가치관 (화살촉)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이상주의자들의 메세지를 관통하여 (왜가리의 부리를 뚫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상실과 부재는 충분히 애도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애도하기 위해선 부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위의 조언들,
그리고 전문가들의 말들은 '왜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내리는 선택이고,
그 선택을 내리고자 고뇌하는 마음이다.
상실과 부재는 우리의 삶이고,
그 속에서 내리는 우리의 선택은,
그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남긴다.
탑 안의 이상적인 세계는 아름답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은 사실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
일생을 바닥에서 살아본 적 없는 '할아버지'는
탑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이상적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할아버지의 순수한 마음은,
누군가 (팰리컨)에겐 지옥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동의한 적 없는 '이상적 세계'속에서,
현실적 어려움 (식량의 부족)을 겪는다.
TV를 보면 을과 을의 싸움을 자주 보곤 한다.
시스템이 없는 이상은 현실의 많은 부분을 간과하곤 한다.
할아버지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마히토는 탑의 후계자 자리를 권유받는다.
주어진 것들이 다름에도,
우리는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새 생명을 먹어치우는 팰리컨을 보며,
우리는 공정하지 않은 이들이라 욕하고 있진 않았는가.
영화 말미 결국 탑은 무너졌다.
자신에게 순수한 적의가 있었음을,
마히토는 깨달았다.
순수한 적의마저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는 것.
자기 수용이 수반되었을 때,
과장된 세계는 무너졌다.
마히토는 극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재에 충실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왜가리의 부리를 매워주고 (이상주의자들의 논리 공백을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채움),
나츠코를 엄마라 부르며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게 됨),
친구를 사귄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히미의 선택이다.
히미는 마히토 엄마의 과거 모습이다.
불꽃을 내뿜는 히미를 보면,
자신의 죽음 (병원에 불이나 죽음)마저 초월하는 모성애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히미의 불꽃은 마히토의 트라우마를 치료한다.
불꽃을 악몽처럼 생각하던 마히토는,
자신을 구해주던 히미의 불꽃을 '희망'으로 느낀다.
히미는 자신이 죽을 미래임을 알면서도,
마히토와 함께 현재의 문을 넘지 않는다.
그녀는 마히토 같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선
죽음조차 행복할 것이라 말한다.
히미의 불꽃은 현재에 충실한다.
그 끝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히미는 '자신을 죽인 불꽃을 내뿜으며' 우리에게 말한다.
현재에 충실하는 선택이 우리가 진정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