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졌다.
새벽 공기가 이불속을 뚫고 들어올 때면 그 시린 고통에 평소보다 일찍이 눈을 뜨곤 한다.
마음의 번뇌가 없을 때는 나를 따스히 감싸주던 이불도,
삶에 지칠 때면,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은 시린 발을 숨겨주는 도피처로 바뀐다.
선택(행동)하지 않은 후회보단 선택(행동)하고 나서하는 후회가 더 낫다.
이 사실은 심리학적으로도, 내 경험적으로도 어느 정도 맞는 사실이다.
선택을 해야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곤 한다.
대부분이 실패이고, 부정적인 결과들이지라도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아픔 (pain)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과 괴로움은 나의 선택이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가장 밝은 빛들을 만났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금세 적응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차가운 공기에서 버티는 것이 당연한 건 줄만 알았다.
그래서 그들이 더 밝게 느껴졌던 거 같다. 별거 아닌 그들의 모습에 따뜻함을 느꼈던 거 같다.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한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내가 뭐라고 이렇게 그들을 힘들게 하는지.'
우리는 가끔 '먼 미래엔 희미해질 지금 이 순간의 고통'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사는 거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아픔을 직면하지 못한다. 아픔을 직면하면 그대로 무너져 영영 일어나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늘 고통과 괴로움을 적절히 선택하며 합리화했다. 딱 나를 죽일 수 없을 정도만큼만.
불쌍한 척, 괴로운 척, 억울한 척.
실은 이 모든 게 도피 수단이었던 거 같다.
별거 아닌 말 한마디의 무게가 나에게는 크게 다가온다.
그 한마디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져버린 내 삶과 마음을 채워줄 때가 있다.
말을 이쁘게 한다고 느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거 같다.
나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해서 걱정된다 말했던 그는,
밤길을 걸으며 그 말들 속에서 주섬 주섬 위로를 모으고 있던 나의 모습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