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가서 뭐 할 거냐고요?

마음의 평화를 찾겠습니다.

by 식빵이

"나가서 뭐 할 건데?" 퇴사 시 단골로 받는 질문이다. 나의 경우 대체로 특별한 계획 없이 퇴사한 편이다. 다급하게 쫓기는 느낌 없이 스스로에게 온전한 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함부로 이런 결정을 내린다면 후회하기 쉽다. 따라서 퇴사 후의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아도 퇴사 전에 고려한 사항은 나름 세밀했는데, 아래에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더 해보고 싶은 직무가 있는가

나는 일 욕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욕심나는 사업이 있으면 해보고 그만두자고 생각한다. 이 회사에서 이 사업을 해볼 기회는 한 번 뿐일 수도 있는데, 못 해보고 나가면 너무 아쉽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이 부분을 저울질할 때에는 현실적으로 내게 그 직무를 수행할 기회가 돌아올 것인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관심 있는 직무가 있고 이미 윗선에 어필도 해보았지만 내부 사정으로 해당 직무를 경험할 기회가 쉽게 오지 않겠다 싶으면 그것만 바라보고 기다리기에는 의지가 꺾인다.


2.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과 비례하여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은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분이다. 조직 분위기가 엉망이라 이곳에 몸 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자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다면? 물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물들고 나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자신이 있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곳에 가서 그런 분위기를 퍼뜨리는 사람이나 안 되면 다행일 것이다.

출근하면 서로 인사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제안에 "아침에 출근하는데 안녕한 사람 있어요? 안녕하지 않은데 어떻게 인사를 해요?"라고 대답하는 팀장이 있었다. 이런 사람과 일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둘 중 하나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휘둘리지 않으며 제 살 길을 찾거나,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버리거나.


3. 몸과 마음의 건강

여러 회사 생활을 하며 내 몸과 마음에 생긴 부정적인 변화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 묘기증(피부가 가렵고 살짝만 긁으면 빨갛게 부어올라 열이 남. 밤새 간지럽고 열이 나 잠을 못 잘 정도)

- 과음, 혼술

- 건선(입술 아래 부분에 심한 각질이 일어나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야만 일시적으로 진정됨)

- 면역력 저하와 스트레스, 편두통

- 자해, 자살 사고의 증가, 벌레 내지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기분

- 다른 것을 해칠 수 없으니 나라도 괴롭게 하고 싶은 기분

- 비흡연자이나 흡연에 대한 충동

- 심한 감기 -> 항생제 복용 -> 구토의 반복


한편,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다.

- 운동 동호회 활동으로 운동하는 습관이 생김.

-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필라테스, 러닝을 꾸준하게 하게 됨.

- 당분이 많은 음료 섭취를 의식적으로 줄임.

- 물 마시는 습관이 생김.

- 다양한 경험으로 자기 효능감이 향상됨.


퇴사를 해야겠다는 결정적인 마음의 신호는 아침에 눈 뜰 때의 기분으로 알 수 있기도 하였다.

- '아 출근하기 싫다', '조금만 더 자고 싶다' 등이 아닌 '비참하다', '죽을 만큼 가기 싫다', 'xx(심한 말)'

- 혹은 눈을 뜨자마자 눈물이 흐름.


혹시 위의 어두컴컴한 내용 중 해당되는 것이 있으신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지금 매우 힘드신 거다. 스스로의 상태를 잘 살펴보시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시고, 해결책(ex. 퇴사)을 강구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나의 경우 여러 퇴사를 거친 현재 묘기증은 1년 만에 완벽히 나았고, 건선은 2년 만에 마침내 거의 나았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잘 몰라 결국 치료하지 못했으니 자연 치유된 셈이다. 다른 부정적 사고들과 심한 감기의 반복도 사라졌다. 반면 건강한 습관들은 아직도 유지 중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 된다.

그러니 회사 생활로 안게 된 버릴 것들을 한 번 꼭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란다.


4. 회사의 장점과 단점 비교

장점(ex)

- 지지적인 동료들

- 조직의 객관적 발전가능성

- 반반차와 같은 소소한 복지

- 흥미로운 사업, 네트워크

- 3번에서 언급한 긍정적 변화들


단점(ex)

- 관료적인 분위기

- 비상식적인 상황을 참아야 하는 것

- 친분에 의해 좌우되는 불공정한 구성원 평가

- 3번에서 언급한 부정적 변화들


간단하다. 장점이 단점을 이기면 계속 다니는 거고, 아니면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5. 퇴사 후 1년 이상 취업에 실패해 생계가 어려워지더라도 이곳의 월급을 포기한 걸 후회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학부 시절에도, 대학원 시절에도 불안정한 수입으로 늘 통장 잔고를 살피며 살았다.

정기적인 월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달콤함을 선사하였으나, 회사 생활을 할수록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름대로 여러 고생을 겪어본 입장에서 어쩌면 무서운 게 없어졌기에, 월급을 포기할 용기가 더 생겼던 것 같다.

단,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비상금을 저축해 두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몇 개월 간은 내가 나에게 용돈을 준다는 생각으로 생계비를 충당하며 휴식기를 가질 수 있다.

퇴직금 일시수령을 결정했다면 퇴직금도 나름 도움이 된다. 만일 저축해 둔 비상금이 적당히 있고, 퇴직금을 일시수령한다면 나중에 주저하기 전에 여행이나 배우고 싶었던 과정을 미리 예약해 버리는 것도 추천한다.

한 번 제대로 환기하고, 당장 재취업이 어려우면 아르바이트라도 열심히 찾아보겠다는 각오로 퇴사를 결정하면 자책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퇴사와 관련하여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도 내 안위와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많이 힘들면 일단 멈추는 용기를 내었으면 한다. 내가 불행하면 그 어떤 것도 소용없다. 누가 뭐래도 아무 상관없다.

'끈기가 없네', '그렇게 금방 그만두면 창피하지도 않니', '뭐해서 먹고살게?' 등등 그 어떤 소리를 들어도 무시하시고, 내 마음이 지옥 같다면 그것을 가장 불쌍히 여겨주시기 바란다.

불행하게, 아프게 지나가는 나의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보상은 그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 애써봐도 도저히 회사 생활을 웃으며 견뎌낼 수 없다면 한 번쯤은 멈춰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고, 치료를 해주든, 운동을 해주든, 더 궁극적인 해결인 퇴사를 해주든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은 넓고, 당신은 존재 자체로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매뉴얼이 없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