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산책
진실한 한 끼 Web Edition
외근과 점심 (3)
책을 만드는 일을 하니까 종일 사무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게 당연해 보이기는 합니다. 동시에 웹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면, 거기에 ‘매거진’이라는 라벨을 붙이기까지 했다면, 취재를 나가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게 갑자기 이상한 일이 되고 맙니다.
몇 년 동안 기고를 중심으로 웹 매거진을 만들었습니다. 어딘가를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 아닌 거기 어딘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연재 자리를 만들고 쉬 타오르지 않는 독자들의 호기심에 숱하게 불씨를 던져 넣었지요. 편집자들도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건 주제가 확실한, 시리즈로 연재하기도 한, 일종의 ‘셀프 기고’였지요. 여차하면 그게 책이 되기도 했으니 연재를 할 땐 편집자가 아니라 필진이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네요. 그러다가 몇 개월 전부터 인터뷰, 기획 기사, 장소 정보 등 취재 기사를 늘렸습니다. 매거진 색깔에 변화를 주고 싶기도 했고, 코로나로 여행 콘텐츠를 받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한몫했지요. 그리하여 오늘은 성북동에 갈 참이었습니다.
4월의 성북동 산책. 기획 기사의 가제는 그러했지만, 골목을 오른 건 3월이었습니다. 쌀쌀한 기운이 슬슬 물러가며 봄뜻이 전해져 오는 따뜻한 날이었죠.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꽃샘추위에 나무들은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습니다. 먼저 오늘 가야 할 곳 중 가장 높은 데 있는 ‘우리 옛돌 박물관’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길상사, 2시에 예정된 책방 인터뷰, 점심을 먹은 뒤 만해 한용운 시인이 살았던 심우장. 거진 하루 치의 산책 코스였지요.
안타깝게도, 혹은 반갑게도 그 모든 곳을 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 옛돌 박물관을 돌아보며 깨달았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불교나 민간 신앙 같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돌, 생활의 필요로 만들어진 돌, 순전히 보기에 좋아서 혹은 치밀어 오르는 예술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만든 돌. 돌을 매질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 이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의 염원과 기대 같은 것이 거기서부터 울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혹은 곧 되살아날 것 같은 바티칸의 피에타상은 이미 15세기 말에 천재의 손길로 만들어졌지요. 분명 미켈란젤로의 사실적인 솜씨도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 옛돌의 수수한 형태와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표정과 미소가 제 정서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박물관의 규모 자체가 한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그런 아담함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습니다. 2층 기획전시실에서 뜬금없이 김환기 화백의 작품과 마주치기도 하고, 이제 다 봤다 하고 건물 밖으로 나가니 그 이상의 규모로 야외 전시장이 펼쳐졌습니다. 옥상에서 성북동 전경을 내려다보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돌을 보러 왔다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걸 누리게 되네요. 전시장에 들어갈 땐 어느 노부부가 함께했지만, 야외로 나왔을 땐 오롯이 혼자여서 풍경 소리도 전부 제 것이었습니다.
옛돌 박물관에서 지체하는 바람에 박물관에서 가까운 길상사는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고양이 책방 ‘책보냥’과의 인터뷰가 코앞이거든요. 책방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은 이미 기사 한 편으로 만들어졌으니 여기서는 줄여도 되겠지요.
그러고 나니 오후 2시를 훌쩍 넘었더군요. 다시 길상사로 올라가야 날 잡고 나온 취재 루트가 완벽해지겠지만 걷기도 걷고 사진도 찍고 말도 많이 했더니 어찌할 수 없는 허기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갈까, 성북동에 도착하면서부터 계속 신경이 쓰이던 식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돼지불백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기분이었죠. 걸어도 충분할 거리였지만 햇볕도 유난히 따가워 도저히 안 되겠다, 한두 정거장이라도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버스 안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봄이 이렇게 더웠던가, 아니면 올해 여름 더위도 예사롭지 않을 거라는 예고인가 이대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계속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쌍다리 돼지불백’이야 워낙 유명한 식당입니다. 미리 구워져 나오는 돼지고기는 식탁 위에 오를 때는 양이 좀 적어 보여도 수저를 놓을 즈음에는 어느샌가 배가 든든해져 있지요. 하지만 제가 쌍다리 돼지불백에서 먹고 싶었던 건 양념 생마늘, 그리고 칼칼한 조갯국입니다. 고기도 맛있지만 이 마늘을 먹기 위해 여기 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고기랑 먹어도 좋고 고기 대신 마늘을 주인공으로 쌈을 싸 먹어도 좋고 그냥 생으로 날름 먹어도 좋고.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먹고 난 후가 걱정되지만 이 정도 마늘 섭취량이면 취재를 다니며 빠진 기력도 보충이 될 거라 대충 믿기로 합니다.
아마 많은 부분에 있어 우리는 주연보다 조연 때문에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선호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냥 봄날 거리를 걷고 싶어서 취재를 나가고, 산책 코스가 좋아 박물관에 가고, 고양이를 보고 싶어서 책방에 가고, 마늘이 먹고 싶어서 돼지고기 구이를 먹고. 선후가 뒤바뀌네요. 사려던 게 덤이 되고 덤이 사려던 게 되고 말았네요. 그래도 괜찮지 않나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 꼭 알 필요는 없다는 느슨함이 말이죠.
입을 헹구어도 마늘은 계속 저를 따라옵니다. 즐기기로 합니다. 만해 한용훈 시인의 심우장으로 올라가려 하자 해가 슬쩍 자리에 앉습니다. 시인의 방에서 그가 열린 문 너머로 바라보던 풍경을 같은 자리에 앉아 바라봅니다. 바닥과 벽에서 스며 나오는 싱겅싱겅한 기운을 느끼며 좌상 위에 놓인 시인의 시집을 펼쳤습니다. 뭘 만들려고 취재라는 걸 하지만, 실은 누군가 이렇게 이루어 놓은 걸 제대로 보기 위해 긴 걸음을 했다는 생각도 슬쩍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