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첫인상
비행기가 뜨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세대의 우울보다 체력의 한계가 더 와닿는 상황이 닥쳤다. 앞서 줄어든 체력만큼 의지가 강해졌다고 자랑했건만, 그 말이 무색할 만큼 끝없이 칭얼대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방콕으로 가는 길은 끔찍하게 멀었다. 유럽으로 가는 열두 시간짜리 비행은 가뿐하기만 했는데 그 반절인 여섯 시간이 더 힘들다니. 자다 일어나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취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 소주 두 팩과 탄산음료를 시켰으나 한 팩을 비워도 머리만 아플 뿐이라 나머지 한 팩은 그냥 챙겨가기로 했다. (이 애물단지 소주팩이 나중에 요긴하게 쓰인다.) 잠을 못 자 피곤하기는 죽도록 피곤했다. 한 시간 정도 출발이 지연된 점도 여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체감으로는 일곱 시간짜리 비행이었으니까. 책도 읽히지 않았다. 음악조차 지겨웠다. 시간이 멈췄거나 비행기가 열기구처럼 공중에 멈췄거나 둘 중 뭔가가 벌어지긴 벌어진 모양이었다.
무한까지 의심해 볼 만했던 비행이 끝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방콕 스완나품 공항에 내렸다. 좁은 기내에서 벗어났다는 데 해방감을 느껴야 마땅했지만, 뭉쳤던 감정을 폭발시켜 채우기에 공항은 지나치게 거대했다. 내 눈이 침침해서 그런지 실내는 어둡고 칙칙한 인상이었다. 에이프런과 활주로를 면한 통유리로 한밤의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텅 빈 대합실을 청소하는 이들은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윤곽이 모호했고, 매끈거리는 쥐색 바닥 위로 노란색과 하늘색 조명이 아른거렸다. 그 빛들은 입국 심사대나 수하물 수취소, 환승 터미널 따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영어보다 우위에 있는 태국어가 만만치 않은 이질감으로 사인보드를 올려다보게 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배낭을 찾은 다음 환전도 조금 했다. 통신사 부스 앞에서 한국 여성 셋이 유심칩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동참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유심칩을 사거나 데이터 로밍을 하진 않았다.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순간 여행이 편해진다는 건 안다. 그러나 그래서는 떠나온 곳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미련 대신 허기에 충실하기로 한 우리는 식당을 찾았다. 한 시가 넘은 시각이라 그런지 문을 연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직원들은 뚱한 표정으로 청소를 하거나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잡담을 하느라 우리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배웅을 해준 친구는 있었는데 환영을 해줄 친구는 없구나. 하지만 주린 배를 안고 터미널 밖으로 빠져나와 밤바람을 맞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덥고 습한 바람이 곧 우리의 이름이 크게 쓰인 픽업 피켓이나 다름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삼 월의 날씨도 춥다며 움츠렸던 기억이 떠오르며 비로소 내가 꽤 먼 곳으로 날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슬렁 거리는 공항 상주 직원의 그림자에서, 코에 감기는 매캐한 디젤 냄새(나는 이 냄새를 좋아한다)에서, 무엇보다 앞으로 한 달 간 우리를 실어 나를 이 젖은 모포 같은 바람에서, 나는 반강제적으로 매력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방콕엔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다. 지하철(MRT)과 지상철(BTS), 시내버스, 삼륜 오토바이인 뚝뚝이, 그리고 택시다. 우리가 방콕에서 제일 처음으로 이용했고, 이후로도 즐겨 탄 건 택시였다. 익히 알려졌듯 방콕의 택시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다. 미터기 요금을 적용했을 경우엔 말이다. 보통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늦은 밤에 방콕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택시를 타게 된다. 미리 알아본 바로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400밧 정도라고 들었는데, 우리의 택시 아저씨는 지나치게 친절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500밧을 요구했다. 한화로 만 칠천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가 약 25km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 비해선 엄청 저렴했지만, 그래도 뭔가 속은 듯한, 정확히 말하면 속아가고 있는 듯한 찜찜함을 지울 순 없었다. 허나 피곤하기도 하고 짐도 무거워 그냥 평균보다 조금 더 주고 말자는 식으로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러다 다음날 주말장인 차뚜착 시장에서 카오산 로드로 가는 택시를 타고 나서야 흥정 요금보다 미터기 요금이 훨씬 싸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택시가 시장에서 카오산 로드까지 가는 데 (멀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면서) 500밧을 불렀는데, 거절한 후 잡아 탄 미터기 택시는 최종 금액이 150밧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의 공항에서야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만 미터기를 켜는 택시를 타야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사실 방콕의 모든 택시엔 ‘미터 택시’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막상 타고 보면 세 대 중 한 대는 미터기를 켜지 않는다. 특히 주요 명소에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은 미터기를 액 떨어진 방향제 정도로 생각한다. 기사가 부르는 값에서 반은 깎아보고 시작하든가 아니면 더 멀리 가기 전에 세우라 그러고 내리는 편이 현명하다. 우리가 호구가 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제대로 된 값만 치른다면 방콕의 택시는 빠르고 안전하며 저렴한 교통수단이다. (게다가 시원하다.) 기본요금 35밧부터 시작하는 미터 요금이 교통체증 심한 방콕 시내에서도 천천히 소액으로 오르는 걸 감상하고 있으면, 가끔 한국의 택시가 원망스러워지거나 여기 택시 기사들은 뭘 먹고 사나 걱정이 될 것이다.
택시는 밤거리를 질주했다. 손님을 기다리느라 심심했던 모양인지 택시 운전사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태국엔 처음인지, 얼마나 있다 어디로 가는지. 워낙 독특한 억양이라 그가 하는 영어를 모두 알아들을 순 없었으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마침내 방문을 환영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구요? 저 한국 드라마 좋아해요!” 아니나 다를까 나와 D의 국적을 들은 그가 반갑게 외쳤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도 그런 반응을 보일 때가 있었다. 가끔은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부러 그렇게 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정작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나는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답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잠자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은 고속도로를 지나 방콕 시내로 진입했다. 수상시장도 있고 왕궁도 있다는 막연한 정보에 좀 더 낡고 열대 우림 같은 도시를 상상했으나 실물은 전혀 달랐다.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은 높은 건물, 급격히 늘어난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밤을 헤치며 거리를 걷는 이들을 보았다. 고가다리를 지탱하는 콘크리트 벽 주변에선 행인이나 운전자를 매혹하려는 여성들을 보았고, 철조망이 쳐진 공터를 따라 달릴 땐 인도에 늘어선 노점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야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았다. 고요와 정적이란 시상을 떨쳐버린, 꿈틀거리는 새벽을 보았다. 내일을 걱정하기보단 현재를 즐기려는 영혼을 귀감으로 삼으리. 해가 뜨면 눈을 뜨는 사람들과 해가 져야 눈을 뜨는 사람들이 릴레이를 하는 도시에선 밤도 삶의 휴지기가 아님을 배운다. 밤에 꿈을 꾸는 누군가가 있다면, 밤에 꿈을 실현하는 누군가가 있지 말란 법도 없다. 역동적인 도시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말이다.
새벽 네 시였다. 보다 가벼운 차림으로 탈바꿈한 우리는 피로와 흥분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낯선 땅을 밟자마자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태에서 산책하는 기쁨을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모험심이 죽은 세상에서, 모험심이 사라진 세대에서 그 바스라진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너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기도 했지만.
어둑어둑한 골목을 걸으며 공항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집요한 더위를 만났다. 절로 땀이 흘렀다. 낮이 오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나 높은 담장 위로 나뭇가지와 넓은 이파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식물들은 어둠에 물들어 수면 아래로 보이는 해초 같았다. 반면 저 멀리 보이는 스쿰윗 대로엔 여전히 불을 켠 식당과 지칠 줄 모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문 닫은 마사지샵과 초라한 카페와 그보다 더 낡고 초라한 세탁소를 지나쳤다. 하늘이 소리 없이 번쩍였다.
BTS 아속 역으로 연결된 육교 아래, 외로운 남자들과 야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서로를 찾아 헤매는 소이 카우보이가 있었다. 환락의 주인공들은 아직도 축제를 끝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빌딩에 샌드위치 전문점 서브웨이가 스물네 시간 운영한다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앉아서 잡담하던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한 여자는 계산대 앞에, 두 명의 남녀는 쇼케이스 앞에 서서 주문 받을 준비를 했다. 몹시 피곤할 시간인데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다.
우리 이후로 어깨에 문신을 한 백인 여성 두 명과 의뭉스러워보이는 백인 남성 한 명이 더 들어왔다. 밤 더위에 이력이 난 기색인 걸 보니 늦게까지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야식을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둘이 같이 와도 따로 주문을 하는 문화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남자는 제일 늦게 들어오고서는 뭘 시켰는지 가장 먼저 음식을 받아갔다. 냉방이 안 돼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장 스피커에서 우리나라 가요가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린 직원들이 배려를 해준 모양이었다. 쾌활한 방콕의 시민들. 아무렇지 않게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현지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낯선 제삼국의 여행자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만날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일지라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서로 같을 수가 없다. 똑같은 인테리어, 똑같은 메뉴판, 똑같은 부자재와 똑같은 레시피를 쓴다 해도 그걸 만드는 사람은 고유의 문화를 내재한 채 유니폼을 입는다. 국가와 도시의 인상을 구분짓는 작은 차이는 사람이 만든다. 순수한 호기심과 호의에서 나온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나와 피부색이 비슷한 계산대 직원이 포장 봉지를 건넸다. 덕분에 야채가, 특히 신선한 양상추와 올리브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가 더 맛있고 더불어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한국에 돌아와 먹은 서브웨이의 샌드위치는 그때와 같지 않았다.
“여기 어떤 거 같아?” 누군가 물었다.
“몰라. 그냥 왔다는 사실 자체가 좋아.” 누군가 답했다.
누가 묻고 누가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둘 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와 D는 침대에 누울 생각도 못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취하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까 산책을 나갈 때 하늘에서 번쩍이던 빛은 번개였고, 이제는 음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처럼 천둥도 치기 시작했다. 창밖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남색 하늘이 덮고 있었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짧은 지평선 부근에선 붉으면서 동시에 보랏빛이 도는, 무엇에 비유할 수 없는 색이 번지고 있었다. 비는 쏟아지려 안간힘을 썼고 여명은 거기에 질 생각이 없었다. 아름다운 새벽이었다. 로비로 내려와 득달같이 쏟아지는 비를 코앞에서 보았다. 로비에 마련된 작은 사당에선 붉은 불빛이, 가로등에선 오렌지색 불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이 젖은 도로 위에 뒤엉켰는데 하늘은 점점 파랗게 지상으로 내리깔렸다. 불현듯 졸음이 쏟아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색과 청색의 대비에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의를 쓴 남자 - 나는 그를 집배원이나 배달원이라고 믿기로 했다. -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아무렇지 않게 그 장면을 가르고 지나갔다. 미혹이 심해졌다. 어느 것 하나 익숙하거나 이미 한 번이라도 본 장면은 없었다. 나는 낯선 곳에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봄도 더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올려다 본 천장이 내 방에서 보던 것과 같지 않음을 실감했을 때, 누군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상할 것 없어요. 당신은 여행 중이니까요.” 그 말에 대답하거나 감탄하거나 뭐라도 부언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금세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