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해도 모든 걸 하는 기분이었다
여행을 가더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드는 도시는 흔하지 않다. 어떤 곳은 물가가 너무 비싸고 어떤 곳은 이곳에서 뭘 하며 먹고살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한 달 정도면 모를까 그 이상 머물렀다간 권태로 죽을지 모르겠다 싶은 곳도 있다. 지금 있는 곳보다 모든 면에서 나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고향을 떠나며 포기해야 하는 가치에 상응하는 이점은 있어야 한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이다.
도저히 이 나라에서 못 살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가끔은 무심코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내 귀로 들을 때도 있다. 내가 했음에도 낯설게 느껴지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서 살고 싶다는 그 말. 사실 정착 충동이 느껴지는 도시가 드물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장소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낯선 땅,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 속으로 터전을 옮길 수 있는지 자문하면, 팔짱을 끼고 입을 삐죽거리며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멀리 떠나서 살고 싶다는 말을 현실적으로 옮기면 이민이라는 단어가 된다. 뭐라? 이민이라고? 갑자기 모든 낭만적인 상상이 무너져 내리며 수북이 쌓인 서류와 냉담한 면접관, 어학원 책상에 코를 박고 있는 나의 뒤통수가 그려진다. 아니, 절차야 닥치는 대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마지막에 쓰러트려야 하는 마왕처럼 깍지를 끼고 노려보는 한 마디, 궁극의 질문을 맞닥트려야 한다. 너한테 그럴 용기가 있어? 이국에서 산다는 가정은, 그러면 뭘 먹고살 거냐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지금 이곳에서도 벅찬 일을 굳이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건 문자 그대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밀도의 용기가.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어떤 절실함이, 도저히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나를 밀어붙인다면 북미의 눈 덮인 숲에서 묘목을 심으면서라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비행기에 이민 가방을 싣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는 상태에 빠져버린다면 말이다. 어떻게 발을 굴러도 도피에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여행을 떠나 절벽을 찾고는 했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균형을 잃고 그들의 땅으로 추락하게 만드는 함정 같은 도시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그 정도로 드라마틱한 심경 변화를 일으킨 적은 없다. 기껏해야, 뭐랄까, 정서적으로 유혹당한 도시랄까, 그런 곳이 몇 군데 있었을 뿐이다.
지금껏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도시는 두 곳이었다. 한 곳은 파리였고, 다른 한 곳은 삿포로였다. (이후로 간 몬트리올이 네 번째 도시이자 갑자기 유일한 도시가 되긴 했지만, 이 글을 썼던 순간에는 파리와 삿포로에 살고 싶었다.) 생뚱맞은 조합이다. 파리와 삿포로 간에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없다. 굳이 끼워 맞추자면 뼛속까지 스며드는 스산한 추위가 비슷했달까. 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듯,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 덮어놓고 완벽했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논리를 뛰어넘는 끌림이 있었을 따름이다. 오래전부터 예정에 있었으나 지금껏 무소식이던 열차가 마침내 도착한 느낌. 내가 바로 그 열차에 타고 있던 것 같은 필연적인 느낌. 그것을 일종의 사랑이라 부른다면, 두 도시 모두 이상적인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랑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번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콕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랐을 때, 한편으로 의아했다. 내 안의 편견에 따르면 내가 동남아시아에서 살고 싶어 할 일은 없어야 했다. 더위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그보단 겨울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진 않아서였다. 하늘을 가릴 만큼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걷는 것도 좋고, 물기 한 점 없이 콧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텁텁한 겨울 냄새를 맡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겨울이 되면 유난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헛헛해지는 게 가장 좋다. 마음에 반 뼘, 때로는 한 뼘 정도 빈자리가 생기면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한 반사작용 때문인지 생각도 많아지고 바닥을 보이던 감수성도 샘처럼 고인다. 눈에 완전히 파묻히고 싶다는 이상한 욕망 따위가 오히려 내가 살아있고, 뭔가를 추구하고 있으며, 결국 이루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실감을 불러일으킨다. 빛깔이야 어찌 됐든 다른 계절에선 찾을 수 없는 생생한 느낌이다. 그런데 애초에 겨울이라는 계절이 없다니, 일 년 내내 무기력증에 빠진 감정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방콕이 예외였던 이유를 찾으려면 이 도시의 어떤 인상이 나를 사로잡았는지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도시는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가를 수 없는 복잡한 신호로 이뤄져 있다. 어떤 도시의 인상은 한번 노출된 마음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 후 어느 날, 불쑥 고동을 울려 사람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사람에 신물이 날 때면 사람보다 그들이 사는 도시의 표정이 더 인간적이라고 믿을 때도 있었다. 방콕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받은 몇 가지 인상이 마치 세이렌처럼 제 옆에 영원히 머무르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수산시장이 건재하고, 왕궁과 사원이 여전히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하더라도 방콕이 과거의 유산으로만 먹고사는 도시는 아니다. 오히려 동남아시아 경제의 중심이자 여행 거점으로서 가장 국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하고 감각적인 쇼핑센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바, 호화스러운 호텔 들. 그리고 초고층 빌딩에서 느껴지는 엄격하고 이해타산적인 표정까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무만큼 인상적인 것은 없었다. 이 도시엔 유난히 나무가 많았다. 서울처럼 조경을 위해 가로수를 심은 느낌은 아니었다. 시민들은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이상 자랐을 것 같은 나무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운 사람들이었다. 인도 절반을 차지한 고목이 건물 위로 거만하게 몸을 기대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체념 비슷한 여유가 여기엔 있었다. 가끔은 이 도시가 아주 거대한 나무 위에 지어졌고, 눈에 보이는 건 땅을 뚫고 나온 가지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륜차와 자동차가 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기 일쑤지만 공기가 그리 탁하지 않은 것도 그만큼 나무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일조량과 강수량이 풍부해서인지 이파리의 색도 유난히 짙어 보였다. 찬란하다거나 청초하다기보단 중후하다는 수사가 어울리는 녹색이었다. 마음까지 단단히 잡아주는 색조가 거리 전체를 덮고 있으니, 풍경과 술에 취해 한껏 들뜨다가도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 앞에선 걸음이 절로 느려졌다. 방콕의 매력은 바로 녹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밤새 내린 비로 말간 얼굴을 한 골목길을 산책하던 둘째 날 아침을 기억한다. 이 층짜리 브런치 카페에 앉아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여행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밤새 불이 꺼져있던 마사지 샵과 빨래방 앞에는 더위나 날파리 따위에 진작 초연해진 여자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쪽 길에는 현대식 호텔이 자리 잡고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편의시설이 줄지어 있었다. 미로처럼 엉킨 뒷골목엔 아시아의 낡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케묵고 어수선한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무리 서구의 대도시를 흉내 내 더 세련되고 더 화려하고 더 새로워지려고 애쓰는 중이라 할지라도 한국 역시 아직은 현대와 근대의 문물이 뒤섞여 있는 나라다. 그 때문에 생활의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기시감과 그럼에도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이질감을 동시에 만끽했던 것이다.
게다가 깨끗한 공기, 흐린 하늘, 높은 습도의 협력 덕분에 눈에 보이는 모든 색상이 선명하고 또 선명했다. 엄격하게 칼리브레이션 한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 기분이었다. 노란 택시도, 빨간 차양도, 회백색 시멘트벽도, 시들 줄 모르는 녹색 바탕 위에 업혀있었다. 절로 느긋해지는 건 비단 내가 여행 중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미니밴 뒷좌석에 앉아 태블릿 피시를 만지작거리는 남자에겐 곧 태우고 가야 할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어마어마한 짐을 들고 내려올 중국인 가족을 공항까지 실어다 줘야 함에도 말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녹색은 여유와 게으름 중간 어딘가를 의미하는 색깔이 되었다.
한인 타운이 있는 스쿰윗 소이(soi. 길이란 뜻으로 태국의 주소는 골목길마다 번호가 붙어있다.) 12를 따라 산책하던 오후도 기억한다. 장기 투숙자를 위한 콘도와 레지던스가 늘어선 좁은 골목이었다. 바람이 불면 수천 개의 나뭇잎이 몸을 비벼댔다. 너무 강마르지도 않고 너무 축축하지도 않은 천혜의 성대를 거쳐 나오는 노랫소리였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걷기만 해도 모든 걸 하는 기분이었다. 딱딱해 보이는 건물투성이였지만, 그럼에도 처음으로 이런 건물의 방 한 칸을 빌려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길거리에 재봉틀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노인은 안경이 이마 위로 넘어갈 만큼 몸을 젖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오토바이는 숫자를 한참 세고 나서야 내 옆을 지나갈 만큼 느린 속도로 달렸다.
오후까지 쾌적한 날씨가 이어진 건 아니었다. 볕은 따갑고 온도와 습도는 내려갈 줄 모르는 불쾌지수 만점의 날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음껏 게을러져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최종 승인자가 자연인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연차나 휴가를 쓸 때도 죄를 지은 듯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양어깨에 하나씩 짊어진 책임과 의무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익숙하고 길든 그 삶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기에 당장은 이 순간을 즐기는 데 급급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끊임없이 출구를 찾고 있었다. 모든 현실적인 이유를 떠올리기도 전에 느닷없이 방콕에서 살고 싶어진 건 이 게으른 자연의 도시가 또 하나의 출구를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끝내 손잡이를 돌리진 않을지언정 거기에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작은 문 하나.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문앞에서 서성이게 될지 궁금했다.
물론 단순히 여유 하나 보고 방콕을 점찍진 않았다. 여기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동기일지도 모른다.) 방콕은 물가가 저렴하다. 볶음밥이나 팟타이 같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은 한 접시에 50밧에서 100밧 사이고, 한화로 계산하면 1천5백 원에서 3천 원 내외다.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매장의 가격 역시 한국에 비해 1~20% 정도 저렴하다. 특히 하루에 두세 잔의 커피를 마셔야 하는 나로서는 음료 가격에 민감하다. 스타벅스보다 저렴한 - 그렇지만 밥값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비싸게 느껴지기는 하는 - 로컬 커피숍을 이용하면 테이크아웃 매장 커피값으로 에어컨과 와이파이, 그리고 편안한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스쿰윗 소이 12에서 찾았던 도이창 커피를 일례도 들자면, 여기선 시원한 커피 한 잔이 60밧, 그러니까 2천 원 돈이었다. D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유명한 스파 전문점 라바나에서 마사지를 받는 동안 커피 두 잔을 마시며 여행 노트를 정리했다. 느리지만 인터넷 연결도 되고 냉방 인심도 후했다. 나중엔 너무 추워서 바깥 자리로 옮기고 싶어질 지경이었는데, 밖에는 모기떼가 극성이라 추위냐 간지러움이냐를 놓고 한참 고민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방콕에서 방을 빌리는 비용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원룸 형식의 그럭저럭 살 만한 방은 월세가 15만 원부터 시작하고, 믿을 만한 이야기인진 모르겠으나 7만 원짜리도 있다고 한다. 거기에 관리비는 월평균 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한다. 오호라, 지금 내 월급만큼만 벌 수 있어도 이 매력적인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구나.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그 반이라도 벌 수 있을는지는 여전히 미지수구나. 나는 힘이 빠지는 계산은 그만두고 이 도시로 기꺼이 곤두박질칠 수 있는 절벽의 경계를 그려보기로 했다.
방을 하나 구해 지내며 힘닿는 데까지 글을 쓰다가 괴롭거나 무료한 밤이면 카오산 로드의 술집에 들어가자. 여러 국적의 사람을 만나 새벽을 더듬고, 그 새벽의 허리춤에서 불현듯 영감을 얻기도 해 보자. 그래, 사시사철 더운 날씨가 견디기 힘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차가운 맥주 한 잔과 함께 언젠간 불어올 시원한 바람을 기다리는 일이 고향에서 버티는 매일보다 더 나쁠 것 같지는 않다. 담벼락 옆에 의자를 놓고 책상 위에 발을 올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면 머리 위로 짙푸른 나뭇잎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다 나와 마찬가지로 누추한 차림의 여행자를 붙잡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지금껏 어떻게 살아오고 그동안 누굴 만나왔는지 묻고 답한다면 옷이 땀에 절어도 마음만은 쾌적할 것이다. 아마 오토바이는 자전거만큼 느리고 조용하게 잠든 내 옆을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