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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몇 번이나 석양을 아름다워 했던가

낙조는 우리의 영혼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색이었다.

by 베르고트

해가 지고 있었다. 땀이 적당히 솟아나는 시간, 거리 위에는 적당한 수의 사람이 배회했다. 밤에 술 한 잔 기울일 술집도 미리 점찍어 둔 우리는 오늘 할 일을 전부 마친 사람처럼 홀가분해졌다. 사실이 그랬다. 무사히 도시를 이동했고, 저렴한 숙소도 잡았으며, 밥도 먹었고 목도 축였고 밤에 놀 곳도 확보했다. 금요일 저녁에 주말을 고대하며 퇴근하는 기분이었다. 퇴근 시간을 기점으로 삶은 어떤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어 마음까지 두근거리는 미지의 영역, 당장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열대의 바다 같은 영역으로 변한다. 반대로 일요일 오후 일곱 시 사십 분쯤엔 삶은 역시 늪이요 절망이라며 방바닥을 긁게 되지만 말이다. 반복되는 한 주에는 이런 극적인 묘미가 있다. 우리는 희곡의 주인공처럼 삶을 사랑해야 하는지 아니면 증오해야 하는지를 두고 갈팡질팡한다. 그리고 판단을 유보한 채 또 한 주를 시작한다. 오르한 파묵은 지나가는 말로 “반복은 행복의 원천이자 보증이자 죽음”이라고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별일 없이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할 수 있다는 데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산 넘고 물 건너는 심정으로 평일을 버티고 나면 어김없이 주말이 온다는 기쁨으로 아침에 눈을 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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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는 방콕보다 나무가 많았다. 잎사귀도 크고 색도 더 진했다. 모든 건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구시가지’라고 이름 붙은 지역은 그래서 좋다. 내가 사는 서울도 구시가지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종로 일대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최근에 고층빌딩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삼 년 정도 그곳에서 직장을 다녔던 나조차 생경할 정도다. 어쩌면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주택가가 구시가지라는 말에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북아현동이나 계동 같은 동네들 말이다. 변화하는 서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는 미래지향적인 빌딩숲 안에서 나도 덩달아 세련된 인간이 된 양 착각하고, 심지어 그 착각을 즐긴다. 그리고 낯선 도시의 옛 도심에 찾아와 나의 배신에 대해 속죄하려 한다. 어쩌면 치앙마이 구시가지에 여행자 거리가 형성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지 모르겠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도시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 역시 고고한 사원과 때 묻은 골목과 느긋해져야 견딜 수 있는 열대몬순기후에서 정서적 고향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속도와 자극과 소비 쾌락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최소한 치앙마이에선 가능해 보인다.



타패 문을 향해 동쪽으로 걸어가던 우리는 등 뒤로 낙조가 따라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햇살의 색은 주황색과 분홍색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우리는 감탄했다. 걷다가 아쉬운 마음에 재차 뒤를 돌아보면, 또 감탄이 나왔다. 그 짧은 순간에는 몰랐지만 해 지는 거리의 인상이 우리 안에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축적의 속도는 해가 지는 속도와 비슷했다. 느리고 묵직했다. 비둘기가 잔뜩 진을 친 해자를 따라 걷다가 독캄이라는 이름의 사원을 지났다. 거기서 첨탑과 나란히 세상을 내려다보는 태양의 민낯을 보았다.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전선 위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새들을 보았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왜 말을 할 수 없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타패 문에 도착해 불덩이 같은 해를 마주했을 때야, 적황색 성벽 사이로 이제 막 밤에 눈 뜨는 거리를 카메라에 담고 나서야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내가 구시가지의 석양에 완전히 홀렸다고. 그것은 회색 아스팔트조차 화폭으로 변신시키는 연금술의 색깔이었다. 우리의 영혼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색이었다. 내 여행의 동반자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을, 아니 그 이상의 기분을 느꼈을 테고 그래서 훗날 이 도시에서의 시간을 최고로 꼽았음이 분명하다.



지금도 그때의 사진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록에만 의지하는 바람에 그 순간을 소홀히 했던 성급함을 애 말라 한다. 그나마 당시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의 태도는 약간의 위로가 된다. 많지는 않을지언정 인파가 끊이지도 않았던 그 날의 저녁. 다들 치앙마이에 오래 머물며 해가 지는 풍경을 적잖게 본 탓인지 누구도 하늘을 지긋하게 바라보거나 그러기 위해 부러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그 무심함이 좋았다. 자연과 시간이 공모한 환상이 이곳에서는 일상이나 다름없다는 말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언젠가 치앙마이에서 많은 날을 머물 수 있다면 고운 석양이 내 일상에도 자연스레 합류하리라 믿는다. 반복이 행복의 보증이 되는 지점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타패 문은 예부터 치앙마이로 들어가는 가장 큰 관문이었다. 곳곳에서 몰려온 상인, 사신, 승려 들이 이곳을 통해 도시를 방문했다. 지금도 매년 열리는 꽃 축제와 만불절 행사, 그리고 송크란 축제에서 타패 문은 공연이나 가두 행진의 중심이 된다.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의 약속 장소, 가장 북적이는 만남의 광장으로 제 역할을 다한다. 하긴 그럴 만하다. 치앙마이에 처음 온 사람이라도 이곳은 쉽게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구시가지를 방황하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을 붙잡고 “타패 문이 어디 있나요?”라고 물어보라. 십중팔구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게다가 밥을 먹든 커피나 술을 마시든 타패 광장 주변엔 갈 만한 곳 천지라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도 걱정할 게 없다. 이곳에선 남는 게 시간이니, 철새처럼 눈에 띄는 모든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그만이니까. 또, 반드시 어딘가에 왔다는 증거를 남겨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좋을 것이다. 불그스름한 벽돌 성벽과 항상 열려있는 단단한 나무문은 당신이 바라던 이국적인 배경이 된다. 다들 기념사진을 찍기 때문에 – 아마 오늘이 치앙마이에서의 첫날인 사람이겠지만 – 부끄러워할 일도, 마다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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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패 문에서 랏차담넌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면 구시가지의 또 다른 매력인 수많은 사원을 만날 수 있다. 나와 D는 여전히 해 질 녘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걷는 중이다. 이 시간에 사원에 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적색과 황색, 그리고 금색으로 치장된 치앙마이의 사원이 노을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 바로 저 햇살을 엮고 짜서 건물을 세웠는지 모른다. 비바람이 벽을 허물어트리면 노을을 자아 허술한 곳을 기웠는지 모른다. 아니, 필시 그랬으리라 믿기로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세상에 이런 조화가 부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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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걸음이 느려지다가 판온 사원(왓 판온) 경내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키 큰 나무가 많아 해가 들진 않았지만, 황금색 체디(승려의 사리나 왕의 유골 등을 모신 탑)를 곁눈질하면 탑에 비친 햇볕을 쬐는 기분이었다. 조경에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는 쉼터에서는 더위도 한풀 꺾였다. 유럽의 거대한 성당에 들어가면 천장으로부터 서서히 내려오는 엄숙하지만 한편으로 온화한 공기를 느끼곤 했다. 반대로 이곳 사원에서는 수평으로 흐르는 고즈넉한 기운, 잔잔한 바람 같은 것에 몸을 맡기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더 낫다는 비교를 하려는 건 아니다.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건축물이 보여주는 미덕에 감응하고 더불어 겸허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시에 사는 마음은 부단히 흔들리곤 했다. 그런데 여행의 바로 이 지점에서, 아마 왔을 때만큼 순식간에 사라지겠지만,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거대한 불탑이 땅을 굽어보는 체디루앙 사원(왓 체디루앙)에서는 이방인을 친근하게 여기는 어린 승려들을 만났다. 처음엔 사진을 찍어도 될까 망설였지만,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보니 한두 번 모델이 되어 본 솜씨가 아니었다. 특히 무리 중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잘생긴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본인 스스로도 저가 출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었다. 렌즈를 통해 사람을 볼 때 느껴지는 감이 그랬다. 교만함 한 점 없이 자연스럽고 자신 있는 미소가 그러했다. 네 명을 한 장에 담고 카메라를 건네주자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진을 확인했다. 프레임 밖에 서는 바람에 같이 찍히지 못했던 개구쟁이 한 명도 “나도 이렇게 찍히고 싶어!”라는 몸짓으로 모델이 됐던 네 명 사이에 끼어들어 장난을 쳤다. 우리도 웃고 친구들도 웃고 다들 웃었다. 승복을 입고 있을 뿐이지 그 또래다운 천진난만함은 그대로였다.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해석할 수 없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렌즈를 바라보던 동자승에게 눈길이 간다. 그리고 낯선 자와 인연을 맺고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길 바라던 내 집착이 부지불식간에 여러 번 충족됐음을 깨닫는다. 나는 피안과 속세 사이에 있는 어떤 인물을, 불심이 깊으면서도 누구보다 삶을 즐길 줄 아는 태국인 전체의 대표자를 만났던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저 흥미롭고 즐거운 순간이었을 뿐이지만, 그렇다, 돌이키면 다르게 보인다. 문득 동자승이 입고 있던 승복의 색깔이 치앙마이의 석양과 그 빛에 잠긴 사원의 혼합색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아차, 정말 꿈과 같은 시간이었구나 감탄하고 만다.





해가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을 즈음, 반대편 서쪽 해자까지 제법 적지 않은 길을 걸었다. 구시가지의 서쪽 경계인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모기향과 면봉, 휴지 따위를 샀다. 생필품을 사는 횟수가 늘었고, 나날이 여행에 길든다는 게 느껴졌다. 아마 그날 밤 가장 큰 걱정은 집요한 모기떼였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그날이 한 번 더 살아보고 싶은 하루였음을 알아차린 지금, 술을 마시며 발치에 피워뒀던 모기향 냄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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