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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식품 '삶의 향기' 에 글이 실렸습니다

'다 괜찮아요?'

by 베를리너



오랜 독일 유학을 마치고 30대 초반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러 군데 이력서를 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낙담하던 차였다.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독일계 회사의 독일인 대표 비서 및 관리직 업무였다. 나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독일계 회사에 유일한 신입 지원자였다. 게다가 나이도 많은.

난 오랜 유학을 지원해주신 부모님께, 첫 월급을 받아 내의라도 사드리고 싶었다. 단정한 정장을 입고, 면접 장소로 갔다. 인사동 한복판에 있는 하얀색 건물이었는데, 일찍 도착해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기다렸다. 머리와 수염이 하얀 외국 할아버지와 한국인 여러 명이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회의실에 들어간 순간 난 깜짝 놀랐다. 면접관은 조금 전 햄버거 먹던 할아버지였다. 아니 대표님이었다. 대표님은 나에게 관련 경력이 있는지 물었다. “전 독일에서 방송국 통역과 현장 코디네이터를 했었어요.” 주눅 든 채 아르바이트 경험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은 웃으며 “그것도 경력이지.” 넉넉한 미소로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난 정식 출근하게 되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직장 동료들 사이, 직장인 예절을 배우느라 진땀을 뺐다. 자유로운 독일 생활에 젖어 상급자에 대한 예절을 몰라 된통 혼나, 화장실에서 눈물 흘린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매일 아침, “다 괜찮아요?” 안부를 물으며, 흰 수염 대표님이 넉넉히 웃어주시는 걸 보며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난 천천히 새로운 업무를 익히고, 동료 직원들과 동화하며, 중요한 제품 영업 관리를 맡는 성과를 냈다.

때때로 행운은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만남은 처음과 달리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걸 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대표님과의 만남은 행운이라 느껴진다. 지금도 힘든 일이 생겨 끙끙거리면, 아침에 활짝 웃으며 “다 괜찮아요?”라고 묻던 대표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동서식품 사외보 '삶의 향기' (5-6월호) 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dongsuh.co.kr/2017/03_mediaCenter/05_webzine_view.asp?idx=1412

조용히 라이킷 눌러주시고, 정성껏 댓글 달아주신 독자분들 덕분에, 작은 성취를 얻게 되었네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브런치 작가분들도 충분히 선정 가능 하실 듯 하여, 다음호 주제를 올려드립니다^^

푸른 향기 가득한 6월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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