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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Jan 15. 2024

가장 작은 것에서 오는 만족

그로로팟 3기 활동기

큰 집에 살고 싶다.

큰 차를 타고 싶다.

큰 텔레비전, 큰 침대, 큰 화장대, 큰 세탁기, 큰 김치냉장고, 모든 기능을 다 갖춘 복합기, 큰 책장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양서(良書)들. 크고 대단한 것들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다. 크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르겠다.

김치냉장고는 좀 컸으면 좋겠다. 생김치도 있고 묵은지도 먹는다. 오래 보관해야 하는데, 김치통은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살던 집보다, 지금 사는 아파트가 더 크다. 남편과 반려견 셋이 살기에 충분 이상이다. 좋은 점은,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쳐도, 이곳저곳 물품을 쑤셔 넣어 숨길 수납장소가 많다는 것이다. 

작은 차는 경차 전용 주차장을 쓸 때만 부럽다. (그런데 B** 미니라는 명품 차가 경차 주차장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것은 예외)       

그런데 지금 날 사로잡은 것은 지름 1mm 정도 되는 씨앗과 길이 1.5 cm 될까 한 새싹들이다.

처음 싹이 날 때부터, 미세하게 살아있음을 표시하는 ‘브니엘’(금어초) 덕분에 집안에 움틀 거리는 에너지를 느낀다. 과묵한 남편과도 대화 주제 하나 더 생겼다. 땅을 머리로 힘껏 밀고 나오더니, 이제 떡잎을 가르고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1차 파종 후 돋아난 세 개의 싹들 그리고 2차 파종 후 땅 위로 몸을 드러낸 줄기와 작은 초록점 까지. 브니엘 들이 열심히 자기 몫을 해주고 있다.  끝내 세상을 구경 못한 씨앗이 있던 자리에, 제라늄을 심었더니 같이 잘 자라고 있다. (사진 왼쪽)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식물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다.  서로 잘 지내는 친구가 되었으면! (*)      

모자 쓰고 나온 금어초 씨앗  
금어초록점


지난해 12월 21일 그로로에서 보낸 씨앗이 포함된 팟팅키트를 개봉하고 파종을 준비했다. 그리고 가이드를 읽었다.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이드를 먼저 읽고 씨앗을 개봉해 보리라. 스티커 붙이기도 잊지 않는다. 지금은 매일 스포이드로 새모이만큼 물 주고 있는데, 분갈이 이후 필요할 것 같다.

매일 식물등을 10시간 이상 씌어주고, 미니 선풍기로 통풍을 1시간 이상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는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계절성 우울증 증상이 있는 나 자신도 햇볕을 충분히 못 쬐고 있는데, 식물에 식물등을 시간 맞춰 쬐어주어야 한다니!     

7시가 넘도록 깜깜해서 일어나기 힘든 요즘, 작은방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문을 열면 잎사귀를 내밀며 반갑게 인사하는 ‘브니엘’ 덕분에 겨울 아침이 밝아졌다.      

따스한 빛과, 적절한 바람이 ‘브니엘’에게 필요한 것처럼,

나에게도 따뜻함과 동시에, 차갑지만 나를 적당히 흔드는 일들이 균형 있게 필요한 것 같다. 따뜻함만 있다면 웃자라는 새싹처럼 내 마음이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게 평상심이 자리 잡도록.     

가장 작은 씨앗에게서 오는 만족감을 오래 누리도록 오늘도 ‘브니엘’에 말을 걸어본다.

‘브니엘, 빛 먹을 시간이야. 바람 먹을 시간이야.’


* 참조: https://stonehinge.tistory.com/873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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