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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Jan 21. 2024

생각지 못한 만남

그로로팟 3기 활동기

22일 만이다.

씨를 파종한 지. 아무 기대도, 계획도 없었는데 쪼꼬미가 얼굴을 내밀었다.

새로운 새싹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떡잎, 속잎 보여주는 브니엘(금어초) 1호가 좀 더 자라길 바라면서 브니야, 예쁘니야^^  하면서 키웠다.

그런데 그제부터 땅을 밀고 나오는 브니엘 6호, 7호가 보이는 것 아닌가.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일들이, 만남이 있을 때가 있다.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대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였다. 스위스 베른에서 자전거를 빌려 시내를 바람처럼 달렸다.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를 맞고 자전거는 바닥에서 미끈하더니 고꾸라지고, 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무르팍은 까지고, 아직도 사진 속에서 영광의 상처를 내보이고 있다. 쓰라린 무릎을 감싸 안으며 여행에 대한 흥미도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짐을 싸서 열차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스위스 베른의 아레강 (스냅사진의 화질입니다)

그리고 열차 칸에서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에서 튀어나올 법한 테리우스, 안소니를 닮은 프랑스 미소년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디 가니?”

“로마. 너희는?”

“우리는 나폴리에 가. 졸업여행 왔어.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든.”

“지금까지 유럽에서 무엇을 봤니?”

“응. 영국 런던에 도착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다녀왔고, 잘츠부르크의 호헨잘츠부르크성, 퓌센의 노인슈바인스타인성, 아름다운 공원 그리고 투명하면서 초록빛 도는 베른의 아레강도 보고.... 이제 로마로 가려고 해.”

로마 야외극장에서

보고 있기만 해도, 만화나 영화 속에서나 본 순수하고 청량한 소년들에 눈과 마음이 씻겨지는 것 같다. 소소한 여행기를 나누자니 무르팍 상처는 어느새 다 나았는지, 머릿속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당시 외국 친구들을 만나면 주려고 챙겨갔던 한국 전통 책갈피를 선물로 주었다. 남부 프랑스 햇빛을 받고 자란 숙성된 화이트 와인을 받았고, 이것 역시 계획 밖의 일이었다. 미소년들과 이메일 주소를 나누고, 가끔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잠시나마 로마행 기차 속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어제는 다친 무릎 때문에 우울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몸을 실었다. 그리고 나를 흔드는 새로운 자극을 만나게 된다. 하루하루가 다채로웠던 유럽 여행을 다녀오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배웠다. 물론 여행지가 달라지기에, 그에 따른 기후, 사람들, 언어, 문화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내일은 오늘과 다를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어제 어떠한 일이 나를 낙심시킬지라도,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를 올라탈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금어초 5호 6호가 세상에 나올 온 힘을 끌어모으고 있다.

0.01mm의 작은 점과 같은 브니엘 씨앗은 계획에도 없었던 생각지 못한 기쁜 일들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물 주고 바람주는 일, 그리고 때 맞춘 분갈이 일정도 잊지 않는다. 그로로에서 소통의 재미와 함께 보너스로 선물 받은 ‘키다리 아저씨 식물등’ 더 넓게, 멀리 빛을 비춰준다.

      

'키다리 아저씨 식물등'과 함께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해 준 브니엘, 고맙다!



*들장미 소녀 캔디 : 1983년 4월 3일부터 1984년 5월 27일까지 들장미 소녀 캔디 MBC 방영

2007년 3월 5일부터 대교어린이 TV에서 매주 월~토 오전 9시 30분 및 오후 6시 20분마다 비디오판을 방영
캔디라는 밝고 씩씩한 고아 소녀가 성장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는 내용

참조: https://namu.wiki/w/%EC%BA%94%EB%94%94%EC%BA%94%EB%9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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