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Grossvater im Bollerwagen von Inge Steineke (Illustrator), Gudrun Pausewang (Autor)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
(잉게 쉬타이네케 그림, 구두룬 파운제방 글/햇살과 나무꾼 옮김)를 읽고
얼마 전 텔레비전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참가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쓸모’라는 말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일까. 사람은 도구나 수단이 될 수 없기에 그렇다.
내 컴퓨터는 참 쓸모 있어. 그 선물은 쓸모 있어. 이런 말은 자연스럽다.
만일 그 참가자가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를 읽었다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 같다.
“난 의미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대인들은 더 이상 복잡한 예술작품, 클래식 음악, 깊은 사색이 필요한 은유나 비유가 가득한 문학 작품을 읽을 시간도,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쇼츠(60초 이내의 짧은 동영상)를 보며 찰나를 소비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유튜브 동영상, 자극적인 신문 기사, 텔레비전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주는 말초적인 자극을 찾는다. 우리의 뇌는 더 이상 의미나 행복을 찾는 능력을 훈련받지 못한다. 짧은 영상을 소비하며,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더 큰 자극으로 잊으려고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에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의 할아버지는 어떻게 대답할까?
이 책은 60 페이지 정도 되는 비교적 짧은 독일 동화이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손자 페피토가 주인공이다.
할아버지는 손자 페피토에게, 벼랑까지 수레를 끌어달라고 부탁한다.
벼랑에 올라가는 도중 페피토의 선생님을 만난다. 벼랑에 올라간다고 들은 선생님이 깜짝 놀라 이유를 묻자 할아버지는 대답한다.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난 이제 지긋지긋해. 내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나? 내게는 소중한 사람도 있었고, 원수도 있었어. 슬픈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어. 더워서 땀에 흠뻑 젖기도 했고, 추위에 떨기도 했어. 일할 땐 열심히 했고, 쉴 땐 쉬었어. 때론 용감하기도 했고, 때론 비겁하기도 했지. 결혼해서는 딸도 하나 얻었네. 지금은 이 손자 녀석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제껏 난 안 겪어 본 일이 없어. 그러니 앞으로 할 일이 뭐가 있겠나?”
할아버지는 지나온 인생길을 선생님에게 이야기한다. 이미 많은 일을 겪은 할아버지는 남은 삶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듯이.
그런 할아버지에게 선생님은 글을 배워보게 권한다.
할아버지는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했었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손자를 얻었다.
삶과 사랑, 죽음, 일을 통해 인생의 격변기를 거친 할아버지. 그리고 소중한 손자가 벼랑에서 자신을 밀어주길 원한다. 할아버지는 왜 삶에 남은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글 배우기를 권하는 선생님에게 별소리한다며 타박하고 가던 길을 간다.
그때부터 페피토는 할아버지의 이름 첫 번째 철자 ‘아’를 땅에 써서 할아버지에게 알려준다.
할아버지는 글자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말들에 의미를 남기는 것.
가는 도중 기타 연주자 루피노를 만난다. 루피노가 아끼는 기타 소리가 왜 이상한지 알려준다. 그리고 기타 속에 번데기를 빼주고, 기타를 고쳐준다. 루피노가 고마움의 보답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을 들려준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길을 떠난다.
페피토는 할아버지에게 두 번째 철자 ‘우’를 알려준다.
아픈 아이를 안고 걱정하던 로자리나 아주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아이를 보인다. 벼랑에 올라가는 중이지만, 할아버지는 아이를 지나치지 못한다. 조심조심 만져보고는 기생충 약인 호박씨를 갈아 우유를 끓여 먹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로자리나 아주머니는 아이의 병을 고쳐준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복대를 짜준다고 한다.
물론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화난 사람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색은 말한다.
“빨간색!”
그리고 페피토는 ‘리’ 자를 일러준다.
낫을 가는 안토니오에게 오늘 날씨를 알려준다.
“오실 때 들르세요. 포도주 한 잔 드릴게요!”
이웃들은 할아버지에게 감사 표시를 한다. 안토니오를 빤히 바라보는 할아버지. 수레를 끌고 올라가는 페피토는 힘들어 지쳐 헉헉거리면서도 할아버지에게 ‘오’ 자를 알려준다.
거듭된 사람들의 진심에 할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 것일까. 페피토를 한번 힐끗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서로 사랑하지만, 피부색이 달라 사람들의 편견에 부딪힌 이자벨과 이지도르에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