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를리너 Feb 15. 2024

오늘부터 1일!

새싹이 다른 새순으로 잊혀지네


브니엘 2호는 꺾인 줄기에서 옆 순을 내고 있다. 꺾인 자리는 표 나지 않고 쭉쭉 잘 크고 있다.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하며, 브니엘들(금어초)에게 물을 주고 선풍기 바람을 부지런히 쐬어주고 있다.

오늘 벌써 1차 씨앗 심은 지 56일 차가 되었다.     

지난주 가녀린 줄기를 보여주었던 브니엘 4호가 현기증 난 듯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명절을 앞두고 부산한 마음이 더 바빠졌다. 브니엘 4호는 일어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고, 난 어떻게든 일으켜보려고 덜덜 떨면서 이쑤시개로 몸을 부축했다.

차도가 전혀 보이지 않아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런데, 브니엘 1호와 2호 화분에서 초록빛이 새어 나왔다.

1차 파종 45일 만에 그리고 2차 파종 36일 만에 새순땅에서 솟는다. 손 흔들며 인사한다.

일주일 만에 피어나는 아이들도, 45일 만에 혹은 36일 만에 세상 구경하러 나오는 아이들 모두 반갑고 신기하다.

발아하는 시점도, 생긴 모양도 다른 브니엘을 보면서, 식물이 성장하고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줄기가 쓰러져 힘없이 안녕을 고하는 브니엘 4호로 마음이 아프기 시작할 즈음, 브니엘 5호와 6호가 나란히 손 흔들며 찾아온다. 잘 자라준다면, 분갈이할 때 살려보고 싶다. 공부할 거리가 생겼다.

올 설 명절 준비에 브니엘 챙기기가 포함되었다. 남쪽에 있는 시댁 방문 때 350km 거리를 최장 10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다.

설 전날 새벽 3시에 일어나 보자고 남편과 이야기 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둘 다 아침형과는 거리가 멀다. 코로나 모드가 종료되고 보니, 지난 추석부터 귀성길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길이 막혀서 늦었다고는 하나, 항상 시댁 가족에게 밤늦게 얼굴을 보이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였다. 새벽 3시 반, 금어초 화분들을 가지고 갈까 고민해 본다. 시댁을 가면 거리가 멀어, 2박은 지내고 온다. 이틀 후 말라비틀어져 있는 브니엘을 상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화분에 테이프를 붙이고 뒷좌석에 고정해 볼까도 했다. 잠시 레옹이 될 뻔했으나, 동반하는 반려견 챙기랴, 화분까지 들고 가는 게 좀 무리인 것 같아 패스!

물을 듬뿍 주고 힘내라는 눈빛을 강하게 발사한 후 시댁으로 출발.     

시댁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온 후, 집까지 오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건 브니엘, 그리고 갓 세상 나온 새싹들이었다.

귀경길 서둘러 온 보람이 있었을까. 집에 오자마자 방문을 벌컥 열어보니,

브니엘 들이 초록초록 하게 생기를 뿜고 있다.

브니엘 1호가 물 달라고 몸을 쭉쭉 늘어뜨리고는 있지만, 별 탈 없어 보인다.

브니엘의 생명력에 또 한 번 감동하는 순간.

새싹들도 뽀송뽀송하게 살아있다.     

한때 애틋했지만, 손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 사람들 때문에 아쉬워하지 말아야겠다. 또 다른 인연이, 또 다른 시작이 손 흔들며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브니엘 키우기는 되려 나를 키우는 여정이 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꺾인 줄기에서 새 잎이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