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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Feb 28. 2024

두 번째 제라늄


딱 1년 전에 제라늄 씨앗을 얻었다.  친구의 남편이 농원을 하는데, 그곳에서 씨앗을 사고, 발아 흙도 받았다.

제라늄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제라늄 나노, 제라늄 링고, 제라늄 매버릭, 제라늄 핀토 프리미엄. 사진을 보면서 어떤 꽃과 빛깔에 마음이 끌리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친구 남편은 씨앗과 모종 주문한 게 고마워선지, 넉넉히 보내주었다.

아파트 같은 동 단톡방에 나눔 광고를 올렸다. 교회 분 중 원하는 분께 씨앗을 드렸다. 씨앗을 나눠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이 작고 여린 선물에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만 이 세계를 모르고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난 핀토 라벤더를 골랐다.

제라늄을 심어 놓고 며칠이 지나자, 얼굴을 흙 밖으로 쏙 내밀었다. 얼마나 신기했던지 SNS에도 올리고, 가족 단톡방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런데, 과습인지, 겨울 부족한 일조량 때문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누워서 식물별로 떠났다.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년 12월, 그로로팟 3기 (식물키우기 프로젝트) 로 선정되었다.

금어초 2차 파종 후, 지피펠렛이 몇 개 남았다. 이왕 같은 시간에 물 주고 키다리 아저씨의 따뜻한 빛과 바람까지 쐬어 주는데, 제라늄도 이 환경을 누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편에 별로 떠난 제라늄이 걸렸는데,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왠지 잘 될 것 같은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냉장고에서 겨울잠자고 있던 제라늄 씨앗을 꺼냈다.

금빛으로 빛나는 씨앗. 금나무라도 되는 것일까.

이름이 예쁜 핀토 라벤더를 심으며, 방안 가득 퍼질 라벤더 향을 상상했다. 그런데 친구말이 이름만 라벤더지 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ㅎㅎ

금어초와 다른 성장속도와 이파리들을 내며, 함께 열심히 자라고 있는 제라늄.

그런데 나의 관심이 집중된 브니엘(금어초)과 달리 제라늄은 항상 2순위였다.

조언들 덕분에 금어초는 한차례 줄기가 꺾인 위기를 이겨냈다. 잎을 무성히 내고 조금만 기다려. 꽃도 보여줄 게라며 열심히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핀토 라벤더’. 라벤이라고 이름 지었다.

라벤이라고 말할 때마다, 코끝에 라벤더 향이 머물 것 같다.

라벤처럼 인정받거나 주목받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는 라벤의 조용한 성장을 기뻐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 출처: 브니엘 꽃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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