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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Mar 06. 2024

낭만을 찾아서

우리 부부는 연애 기간이 짧았다.

전 세계가 코로나 전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뒤덮인 2020년 봄에 만나 가을에 결혼했으니. 한 사람을 알려면 사계절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겨울을 생략한 셈이다.

당시 내가 42살 남편이 45살이었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엄중한 분위기였다. 영화관 한번 마음 놓고 가지 못했던 연애 시기.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100여 명의 하객들이 참석했다. 마스크 쓰고 눈만 내놓은 채 결혼사진에 남아있다. 노총각, 노처녀의 결혼을 축하하러 달려와 준 하객들 덕분에, 마스크 속엔 웃음이 만발했다. 따뜻한 결혼식이었다.

결혼반지 ^^

연애 기간이 짧아서 결혼 후에도 한참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교집합을 찾는 기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연애할 때처럼 달달하면 좋겠지만, 의무와 책임 그리고 현실적인 생활 등으로 낭만 가득한 데이트 같지 않았다.

기념일은 연애하듯 보내고 싶었다. 자의든 타의든(?) 생일을 앞두고 꽃다발을 안겨주는 남편.

                                                                            



올해 생일을 앞두고, 지인의 클래식 기타, 바이올린, 첼로 삼중주 연주회에 초대받았다. 음악회 주제도 낭만주의 3인조이다. 기타 연주자가 낭만은 여유라고 말한다. 삶에 소풍 온 것처럼, 관조하는 태도를 갖는 것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축하 화분도 살 겸 분갈이도 하고, 꽃다발을 살 겸 단골 꽃집에 들렀다. 작년 이맘때 선물용으로 산 고무나무가 키가 무럭무럭 자라 집이 너무 좁아 보였다.

집에 녹보수가 살던 집이 있어, 고무나무에 선물했다.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고무나무를 분갈이해주고 있는 동안, 난 꽃다발과 화분 중 하나를 생일선물로 고르기로 했다.

꽃다발을 받을 때는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 꽃이 시든다. 식초를 치고 설탕을 넣고 갖은양념을 해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움이 스러져 버린다.  말려서 드라이플라워를 하든지 아니면 버려야 한다.

꽃이 화려한 만큼, 시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안타깝다. 나이 들면서 외적인 모습이 변하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이다. 거스를 수 없는 섭리인 듯하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꽃을 보며 느끼는 안쓰러움이, 화사함이 준 즐거움보다 컸을지도 모르겠다.

한쪽에서 우아하게 긴 목을 빼며 나를 지켜보는 화사한 ‘호접란’이 눈에 띄었다.

“란들은 오래 가요. 물은 한 달에 한 번 주고. 그늘에 있는 게 좋아.”

내가 란들에 눈을 고정하자, 눈치 빠른 사장님이 한마디 거든다.

물을 한 달에 한 번! 게으른 식집사에게 맞춤형이다. 우리 집은 동남향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들은 빛 찾아 위치를 바꿔줘야 한다.

그래! 결정했어. 빠른 손놀림으로 사장님이 고무나무가 있던 화분에 란을 심어준다.

색상은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그리고 고무나무는 녹보수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본 사장님이 물을 더 많이 주라고 한다. 작은집에 뿌리를 내리고 버텨준 고무나무가 고맙다.

'잘 키웠네!' 주인장이 칭찬해 준다. 초보식집사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우리 집에 두 식구가 늘어났다.

주변에 놀라운 식물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식집사님 들을 본다.

호기심이 발달한 초보식집사는 부러움을 느낀다. 동시에 또 다른 세계가 주는 기쁨을 알고 싶어 진다.

브니엘(금어초) 1호 2호는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식구들 란, 그리고 새집에 안착한 고무나무가 생일에 맞추어 찾아와 주었다.

호접란의 꽃말이 ‘행복이 날아든다.’라고 한다. 집안에 아름다움을 퍼뜨리는 호접란을 볼 때마다, 행복을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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