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겨울, 특히 베를린의 11월은 한국인들에게 참 난감한 시간이다. 거리를 물들였던 형형색색의 단풍도 조용히 옷을 벗어 내려놓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을 기다리는 시간.
오후 3시면 어둑어둑 해가 몸을 숨기고, 4-5시쯤 되면 깜깜한 밤이 내린다. 패딩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들은 빛이 있는 곳으로 발을 재촉한다. 중국상회에서 어렵게 구한 배추로 고춧가루 솔솔 뿌려 담가 놓은 김치로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한 상 차려낸 후 텔레비전을 틀었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슈퍼모델로 재탄생하는 프로였다.
요즘 한국에서도 각종 배틀 프로그램이 유행이지만, 당시 유학생 신분의 나는 미운오리새끼에서 담당 심사위원들의 독설로 가득 찬 평가를 감내하고 눈물 삼키며 개선하는 노력으로 끝내 슈퍼모델로 탄생하는 걸 바라보면서, 선망하는 백조가 되고 싶은 대리욕망을 만족시켰다.
백조가 된 슈퍼모델이 스테이지를 걸어 나올 때 배경으로 깔리는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맨디
(Mandy)라는 서정적인 팝송은 감동을 배가시켰다.
토요일 늦은 아침, 눈을 뜨면 고요한 기숙사 방에서 적막감에 숨이 막힐 것 같다. 눈이 마주친 천장에 말을 걸어볼까?
독일 학과 친구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주말엔 약속을 하고 만나는 모양이다. 새 학기가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을까? 베를린의 기숙사, 학교 그리고 영혼과 육신에 맛있는 밥을 줄 수 있는 한인교회 외에는 갈 곳도, 아는 곳도 없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주말,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곤욕일 때도 있었다.
안 되겠다. 나를 일으킬 무언가를 찾아야겠다. 멘자(Mensa; 학생식당)가 있는 학생회관 건물에 게시물이 붙었다
"운동강좌모집(가을/겨울학기)"
오픈된 강좌를 눈으로 쭉 훑어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수업이 있었다
"힙합 강좌"
강의료는 멘자 점심 두세 번 먹을 수 있는 가격 수준이었다. 대학 시절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음악에 맞춰 재즈댄스를 배웠던 적이 있었기에, 눈 딱 감고 등록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지정된 학생회관으로 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편안한 운동복을 입고 자리에 앉아 몸을 풀고, 옆 자리 학생과 이야기하거나 학교신문을 보고 있든지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녕~! 무슨 라디오 듣고 있어?”
난 옆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 여자애에게 말을 걸었다.
“하이! 난 음악을 들을 때 중간에 끊기는 게 싫어. 음악에 푹 빠져 있고 싶을 때가 있거든. 라디오는 그게 안 돼.”
제시라고 소개한 뒤 이어폰을 다시 귀로 가져간다. 음악에 자신을 맡기고,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처음엔 스텝부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가장 즐거운 자신을 상상하고 걸으세요!” 강사가 주문했다. 난 양팔을 흔들흔들하면서 스테이지를 박차고 걸었다.
“자, 지금부터는 가장 슬픈 때를 상상하면서 스텝을 밟아보세요.”
“자신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아무리 섹시하다고 주문을 걸어봐도 강사는 다시 다시!라고 외쳤다.
얼굴 근육을 다 동원하고,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고, 강사가 바라는 포즈와 표정을 만들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언젠가 베를린 클럽을 가 본 적이 있었다. 강렬한 테크노 음악에 맞추어 마치 세상에 혼자 사는 것처럼 느끼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독일인들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실내수영장에서 몸은 물속에 잠기게 두고, 머리만 밖으로 내놓은 채, 천천히 수영을 온전히 즐기는 모습.
공원에서도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벌렁 누워서, 몇 시간이고 자연이라는 전원에 콘센트를 꼽고 에너지를 공급받는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상태. 독일 친구들은 이를 “압샬텐(abschalten)”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동안, 다른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차단하는 연습. 그 대상이 무엇이든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내가 감정을 느껴보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음악에 나를 맡기고 몸에 힘을 빼며 천천히 나를 표현해 보았다.
“자 이번 강좌가 끝나면 기념으로, 베를린 하키 셔 마크트 (Hackescher Markt ; 하키셔마크트)에서 다 같이 공연을 할 거예요. 본인 위치를 잘 기억해 놔요.”
힙합 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선언을 던졌다. 이제 동작을 하나하나 익혀가며, 걸음마하듯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정도인데 거리 공연이라니!
다른 독일 친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마치 함께 즐기러 가는 댄스파티 정도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신경 쓰지 마! 평가하는 게 아니고, 해마다 축제에서 하는 거라 편하게 하면 돼!”
내가 걱정을 하고 있자, 이어폰을 끼고 몰입을 논하던 제시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었다. 독일인 중 체격도 작은데 다가, 검정머리 아시아인이라 눈에 뜨일 텐데. 그날부터 전전긍긍해 가며 동작을 외우고 전철 속에서, 화장실에서 밥을 먹다 가도 머릿속에서는 음악을 틀고,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난 이렇게 노력하는데, 막상 같은 공연을 하고 있는 독일 친구들은 릴랙스해 보이고 공연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빌 슈파스! (Viel Spass; 재미있게 해)!”
공연의 마지막 팀으로 소개되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제시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제야 나도 이 자리를 즐기고 픈생각이 들었고, 큰 나무 밑에 세팅된 무대 위 내 자리로 걸어갔다.
강사분은 무대 아래서 웃으며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무대 아래 관중들 베를린 시민들은 음악이 시작되기도 전에 따뜻한 미소를 발사하며, 우리를 추켜세웠다. 음악이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게, 난 무대를 휘젓다 헉헉 대면서 마무리 동작을 했다. 옆에 섰던 제시도 땀이 송글 송글 맺혔지만, 객석과 나를 돌아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난 같은 팀에서 한 학기 동안 슬픔과 환희 섹시함 매력 두려움 등 모든 감정을 몸짓으로 발산하며 친해졌던 친구들과 비로소 하나 된 소속감을 진하게 느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처럼 내 몸짓과 춤이 관중에게 흥겨움과 즐거움이 되어주었
다. 난 오리새끼에서 박수갈채를 받는 배틀 프로그램 속에 모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응
원을 아끼지 않으며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긴 베를린 시민들과 함께, 이 사회에 리듬 한가락을 보
탤 수 있는 존재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해 11월의 주말은 그렇게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집중과 몰입 그리고 하나 됨으로 뜨겁게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