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없는 변주

- 베네치아 ①

by 황지원

베네치아, 테마 없는 변주 Variazioni senza tema


겨우 남은 호텔방 하나를 잡았다. 해지고 변색된 싸구려 양탄자가 깔린, 위쪽으로는 작은 창문이 덩그러니 떠 있듯 달려있는 이 답답한 싱글룸은 여행가방 하나를 펼치기에도 넉넉지 않았다. 오직 가격만이 파리나 밀라노의 고급 호텔급일 뿐. 불편한 게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통신망도 수시로 끊겨서, 가령 식당에서 음료 한잔을 마시고 결제라도 할라치면 웨이터는 꼭 카드를 들고는 한층 더 위로 올라갔다 와야만 했다. 한참 후에야 나타난, 잘 생겼지만 심드렁한 표정의 그는 꼭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This is Venezia.”(뭐 이게 베네치아죠)


숙소를 나와 베네치아의 대운하 ‘카날 그란데’를 한 바퀴 도는 1번 바포레토(수상버스)의 티켓을 끊었다. 그 ‘버스’는 여러 곳을 꼼꼼히 돌아간다. 카 도로, 리알토, 산 토마, 카 레초니코, 산 사무엘레. 이곳은 어느 총독의 사저였고, 또 저곳은 과거 지중해 무역의 거상들이 상담을 벌이던 가장 큰 국제무역 회관이었다. 시간은 이미 초저녁이라 수변에 위치한 발코니 레스토랑들도 속속 조명을 밝히고, 한낮에 이 섬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 목소리들, 소음들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워낙에 느릿느릿 움직이는 데다, 촘촘히 늘어선 정류장마다 닻줄을 엮고 풀며 접안과 출항을 반복해야 하다 보니 수상버스의 운행은 짧은 거리라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로마 광장에서 출발해 기차역에서 사람들을 잔뜩 더 싣고는, 리알토 다리와 산 사무엘레, 그리고 산 토마 지구를 지나니 벌써 캄캄한 가을바다다.


바퀴 달린 탈 것이 없고, 저녁이면 관광객들은 육지 쪽 메스트레로 대부분 빠져나가니 밤의 베네치아는 한없이 고요하기 마련이다. 거기다 ‘어둡다’. 베네치아 화파로 불리는 화가들의 화려한 색채감각도 유명하거니와, 비발디나 마르첼로의 바로크 음악에서조차 찰랑이며 반짝이는 빛의 유희들이 느껴지는 게 이 도시다. 그러나 밤이 되면 세상 어느 곳보다 어두워서, 심오한 침묵과 고요한 신비가 온 도시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전성기 시절 베네치아 인들이 바다 위에 쌓아 올린 거대한 석축 건물들만이 신전처럼 좌우로 도열해 있는데, 어느 대저택 ‘팔라초’에서는 모든 직접 조명들을 전부 끄고, 창문을 운하 쪽으로 반쯤 열어 놓은 채 옅은 크림색 커튼을 살짝 쳐 저녁바람에 자연스레 펄럭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저 깊은 곳에 전구색 조명 하나만을 밝혀, 바깥쪽 운하에서 그곳을 올려다보면 희미하고 따뜻한 빛을 받아 일렁이는 실루엣이 마치 지금도 실제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수상버스의 육중하고 둔탁한 선체가 질리오(Gilio) 역을 출발해 산 마르코 광장으로 뱃머리를 트는 순간에 마주쳤던 이 찰나적 풍광은 아직도 내게 베네치아가 선사한 가장 황홀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쁘로씨마 페르마타, 싼 마르코 싼 마르코!" (다음 정거장은 산 마르코, 산 마르코!)


버스를 탄지 40여분, 카랑카랑한 톤의 안내 멘트가 몽롱해진 정신을 다시금 깨운다. 드디어 ‘베네치아의 심장’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한 것이다. ‘ㄷ’ 자로 생긴 이 광장은 예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베네치아를 침공해 결국 공화국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은 27살의 나폴레옹은 산 마르코 광장의 장엄한 풍광에 경탄 섞인 찬사를 보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산 마르코 광장에는 역사적인 명문카페 세 곳이 있다. 플로리안(Florian), 콰드리(Quadri), 라베나(Lavena)인데, 작곡가 바그너가 단골이었던 라베나도 좋고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콰드리도 훌륭하지만, 역시나 카페 플로리안에 마음이 더 끌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이며, 이탈리아 커피 역사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사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활약하던 시대에 문을 연 이 카페는 원래 다른 이름이 있었지만 곧 주인장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의 이름을 따 플로리안으로 굳어진다. 단골은 괴테, 바이런, 카사노바 등이었고, 베네치아 태생이거나 베네치아를 방문했던 유명인 거의 전부가 플로리안에서 커피를 마셨다. 플로리안은 오늘날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우아하고 화려한 카페이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면 진한 커피를 은쟁반에 담아 오는데, 여기에 작고 예쁜 과자, 초콜릿, 물 등이 함께 나온다. 카페 앞 야외 테라스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자면 전속악단이 연주하는 나른하고 달달한 음악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물론 계산서에는 꼭 ‘무지카(musica)'라고 해서 음악을 들은 비용이 따로 붙어 나온다.



베네치아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언제나 제 나름의 ‘마술적 환상들’을 심어주곤 한다. 문학을 예로 들면 어떨까. 셰익스피어는 <오셀로>에서 국제적인 무역대국 베네치아에 살고 있는 북아프리카 출신 흑인 제독의 영광과 좌절, 콤플렉스와 몰락을 아드리아 해의 비경처럼 그려냈다. 후일 주세페 베르디가 오페라로 더욱 아름답게 다듬었는데, 데스데모나가 숨지기 직전 노래하는 아리아 ‘버들의 노래(Canzon del salice)’는 너무도 황홀해서 지금도 대운하의 갈래길로 핏줄처럼 번져나가는 작은 물줄기의 어느 틈새에서 이 노래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듯하다. 독일인들도 베네치아의 황홀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매일 아침 산 마르코 광장의 라베나 카페에서 커피와 아침식사를 즐기고는, 밤마다 저택의 발코니에 앉아 저 멀리서 몽환처럼 들려오는 곤돌라 뱃사공들의 베네치아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고혹적인 사랑의 2 중창도 베네치아의 밤바다가 뮤즈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예술작품이 있다. 영화로는 비스콘티의 <센소>가, 오페라는 폰키엘리의 <라 지오콘다>와 베르디의 <두 사람의 포스카리> 등이 역시나 베네치아의 빛과 어둠 모두를 다룬다. 미국 출신의 작가 돈나 레온은 아예 베네치아로 삶의 터전을 옮겨와 이 도시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추리소설들을 썼는데, 국외자의 심정으로 경탄과 권태를 뒤섞어 베네치아 문명의 아름다움에 극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현재가 그 황홀한 예술작품들 속에 투영된 것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안다. 지중해를 제패했던 장대한 역사와 수변의 화려한 대리석 건축물은 분명 찬란하지만, 현대의 베네치아는 그저 시름시름 앓고 있는 도시다. 무엇보다 평범한 ‘보통시민’들이 너무 적다. 오고 가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관광객과 여행업 종사자이니,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기구 같은 느낌이다. 플로리안이나 라베나 같은 명문 카페의 에스프레소는 턱없이 비싸고, 한 두 골목 옆길로 빠져 현지인들의 집결지를 기대하며 들어간 카페에는 이집트인이 영수증을 받고, 중국인 바리스타가 도자기 잔 대신 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일회용 잔에 커피를 담아 내준다. 이탈리아 어디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부박한 풍경들이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우리 시대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써냈다. 그의 단편집 <녹턴> 속 이야기들인데, 특히나 첫 단편 ‘크루너’는 참으로 애잔하다. 이야기는 이렇다. 산 마르코 광장에 면한 어느 카페의 밴드에서 일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얀은 생전 어머니가 그토록 열광했던 왕년의 슈퍼스타 팝가수 토니 가드너와 마주친다.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간 얀은 오히려 가드너에게 개인적인 부탁 하나를 들어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 저녁 부인을 위해 곤돌라 위에서 세레나데를 한 곡 부를 예정이니 거기서 기타 반주를 좀 맡아달라는 것. 얀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가드너의 사랑 노래에 반주를 넣어보지만, 곧 이 '세레나데 리추얼'의 예기치 못한 진실과 마주한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고 효용이 다한 이 커플의 이별의식이었던 것.


“전 여전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드너 씨. 당신의 노래들은 모두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연인들이 사랑을 잃고 헤어져야 한다면, 그건 슬픈 일입니다.”


60대의 한물간 인기 가수 토니 가드너와 그의 유명세만 쫓아 결혼했던 부인 민디. '윈도 부부'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날 저녁 곤돌라 세레나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그들 주변에 서 있는 건 동유럽 출신의 떠돌이 기타리스트 얀과 그런 이방인 노동자를 대놓고 경멸하는 토박이 곤돌라 뱃사공 비토리오다. 현대 베네치아의 어쩔 수 없는 '너절한 쓸쓸함'을 작가 이시구로는 조곤조곤 나지막한 목소리의 '소토 보체'(sotto voce)로 읊조리고 있다. 토니 가드너의 젊은 20대가 돌이킬 수 없듯, 베네치아의 전성 시절도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오후의 비처럼 쓸쓸한 섬. 그러나 동시에 찬란한 과거의 역사와 건축, 예술품들은 단 한순간도 빛을 잃지 않는 이율배반의 도시. 이 복잡한 표정의 베네치아를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그에 관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결국 ‘테마’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 도시는 이미 주제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변주만은 여전히 아름답고, 애절하며, 쓸쓸하도록 우아하다. 누가 뭐래도 다시 한번 베네치아를 찾아갈 시간을 기다린다. 언제나처럼 이 섬은 우리의 기대를 헛되게 만들고, 언제나처럼 또 다른 새로운 황홀경을 찾아 나서도록 등을 떠밀 것이다. 본질은 없고 퇴영만 남았으면 또 어떤가. 미안하지만 당신과 내 인생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섬이다. 부박하고 너절하지만 그래서 매혹적인 곳. 'This is Venezia'. 그래, 그게 베네치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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