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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Nov 16. 2019

기다림

내가 우주에서 나를 다시 찾으러 올 사람들을 기다린 지는 좀 오래 되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간단히 멀리 우주로 나간 우주선이 다시 지구로 귀환할 때 필요한 게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주선은 태양계 너머까지 나가서 어딘가를 탐사하고 다시 돌아올 예정인데, 돌아올 때의 연료까지 모두 짊어지고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 듯 하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고체 연료가 가득 채워진 채로, 계획 대로 목성 언저리에서 우주선과 분리되었다. 곧 거대한 목성의 중력이 나를 잡아 끌어, 이제 나는 목성의 궤도를 돌고 있다. 분리된 뒤 22년 하고도 35일 뒤에 나는 태양계 바깥에서 돌아오는 우주선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할 일이란 그러니까 조용히, 우아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우주는 조용하고 춥고 어둡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를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기는 목성의 힘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물리적 작용 때문에 나는 바로 목성을 향하여 끌려가는 대신 큰 타원을 그리며 목성 주위를 돌고 있다. 붉은색의 토마토 소스 위에 스트링 모짜렐라 치즈를 얼기설기 얹고 오븐에 살짝 돌려 녹인 것 처럼 생긴 목성은 나의 첫 번째 친구이다. 소스와 치즈가 꾸물거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위안이 된다. 묘한 중독성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매일 그 것만 보고 있자니 나는 금새 질려 버렸다. 애초에 목성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나는 목성에 비하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다. 무엇보다 목성은 자신의 주위를 도는 79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같이 나보다 크고 늠름하다.


79개의 위성들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목성의 주위를 돈다. 어떤 위성들은 목성이 자전하는 방향을 따라 돌고, 어떤 위성들은 그 반대로 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제일 목성과 가까운 위성은 겨우 일곱시간 남짓만에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온다. 제일 바깥에 있는 위성은 980일 쯤 걸린다. 내가 도는 궤도는 그 중간쯤에 있어서, 502일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내 양 옆의 이웃 위성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돈다. 나보다 조금 더 목성에 가까운 위성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그러니까 목성의 공전 방향을 따라 돌고, 나보다 조금 더 목성에 멀리 위치한 궤도를 도는 위성은 그 반대 방향으로 돈다. 그들은 꽤나 멋진 이름도 있다. 카르포와 발레투도. 


내가 이 궤도에 자리잡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카르포를 만났다. 그다지 크지 않고 크레이터 자국들도 많은 세모난 남색의 친구였다. 나보다 아주 조금 빠른 속도로 목성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속도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한번 만나기만 한다면 나는 카르포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숫기가 비교적 없는 성격이었어서 처음에는 서먹했다.  카르포는 처음에는 내 뒤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나랑 조금 같이 도는가 싶었지만, 어느 새 조금씩 앞서나가고 있었다. 서로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게 들리기 시작할 때야 비로서  우리는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음을, 우리가 친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천천히 친해진 누군가가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다시 만난다면 이전처럼 오랜 시간을 다시 같이 보낼 수 있을 것이었지만 그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발레투도는 카르포와는 다르게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도는 위성이었다. 크기는 카르포와 비슷했지만, 적갈색에, 크레이터 자국 하나 없이 매끈한 구형이었다. 우리는 꽤 자주 만날 수 있었으나,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무척 짧았다. 하지만 발레투도는 붙임성이 좋은 위성이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이면 큰 소리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서로 가까워졌다 다시 스쳐지나가는 별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나의 이야기를 청했다. 그리고는 멀어지면서는 곧 다시 보자고 쾌활한 목소리로 웃으며 작별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발레투도는 언제나 나의 생각보다 조금 빨리 나타나서, 내 기억보다 조금 더 밝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냈다.


지금까지 딱 한번, 각자의 자전 주기와 궤도가 맞아서 우리 셋이 함께 만났던 적이 있다. 나는 카르포에게 발레투도의 이야기를, 발레투도에게 카르포의 이야기를 했었다. 둘은 이미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고,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친해지는데에 시간이 걸리는 카르포에게 발레투도와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너무 짧았다. 이번엔 네가 있으니 좀 다를 수도 있겠다고 카르포는 나에게 이야기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멀리서 작은 반짝임이 다가온다 싶더니, 천천히 적갈색의 동그란 발레투도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여느 때처럼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안부를 묻는다. 우리 셋은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서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못 본 사이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 자신이 보았던 일들, 자신이 만났던 다른 위성들이 들려준 이야기들, 우주의 저 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문들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번의 만남은 특별하다고, 멀어저가는 발레투도가 우리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렇게 셋이 같이 만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발레투도는 언젠가 내가 말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계산을 해본 듯 싶었다. 벌써 예정된 22년하고 35일 중 반 이상이 지나있었다. 나와 카르포와 발레투도가 다시 함께 만나게 되는 날이 오기 전에, 나는 태양계 바깥의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우주선과 만나 지구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나와 카르포는 계속 여기에서 같은 궤도로 돌고 있으니까, 하고 점점 작아지면서 발레투도가 말했다. 모든 존재는 결국 어떤 원을 그리며 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만드는, 목성보다 더 거대한 힘이 있어. 그 힘에 이끌려 너는 이 곳으로 다시 오게 될거야. 그리고 때가 맞다면 우리들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우리는 네 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릴게.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아냐. 어차피 다른 할 것도 없는 걸. 그의 목소리는 그의 크기와 함께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엔 사라졌다.  


그 다음의 열흘간, 카르포가 나를 완전히 앞지르기 전의 시간 동안 나와 카르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으나, 대화는 종종 끊기고, 우리는 서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카르포는 다시 천천히 나를 뒤로 한 채 앞으로 멀어졌다.


하지만 어김없이 발레투도는 다시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사라진 반대편에서 다가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다음에 카르포와 만났을 때에도 우리의 대화는 다시 예전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속도와 리듬으로 느리게 흘러갔다. 내가 어둡고 춥고 따분한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이 두 위성 덕분이었다. 태양계 바깥에서 돌아올 우주선을 향한 긴 기다림을 카르포와 발레투도를 향한 짧고 반복되는 기다림들로 대체하면서, 나는 주어진 나의 궤도를 돌고 또 돌았다.  




멀리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은색의 작은 물체를 보았을 때, 나는 그 것이 사람들을 태운 우주선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 계획된 시간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선은 나를 향해 천천히 날아왔다.  그리고 그 우주선에서 신호를 받은 나는 천천히 잠들어있었던 시스템을 깨우고, 네 모서리에 장착된 자세제어 엔진을 작동시키며 서서히 십수번을 돌았던 궤도를 이탈했다. 카르포도, 발레투도도, 저 멀리, 천천히 꾸물거리는 목성 너머에 있을 터였다. 나는 천천히 발레투도보다 바깥쪽에서 돌고 있었던 에우로포리에의 궤도를, 곧이어  S/2003 J3 과 S/2003 J18의 궤도를 지난다. 목성은 점점 작아진다. 두 어번 정도 인사한 적이 있던 텔크시노에가, 내가 자신의 궤도를 지나칠 때 쯤 근처에 있었다. 텔크시노에는 자신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된 적도 처음이었고, 또한 누군가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보는 것 역시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구까지 좋은 여행 하기를, 하고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카르포와 발레투드를 만나게 되면 인사를 전해달라고 그랬다. 텔크시노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던 궤도를 따라 계속 돌며 사라졌다. 


코레와 킬레네의 궤도 사이의 우주에서 나는 22년 만에 우주선과 다시 도킹했다. 사람들은 딱 22년 하고 35일어치 만큼 늙어 있었다. 그 사이에 두 명이 죽었다. 하지만 예비 인력이 있어서 그들의 임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나의 금속 외피와 구조들도 22년 35일어치 만큼 늙어있었으나 역시 지구까지 귀환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은 내 안으로 들어와서 이런저런 것들을 점검해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에 내 안에 저장되어있던 연료관을 연장시켜 우주선의 엔진에 연결시켰다.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우주선 주변의 공간을 왜곡시킨다. 진동 속에서 나는, 이제는 잉어의 눈동자 크기 정도로 작아진 목성과, 그 별의 주위에서 티끌만한 크기로 돌고 있는 청색 별과 적갈색 별을 본다. 발레투도의 말 대로 지구의 중력보다 더 큰 힘이 있어서, 그 힘이 언젠가는 나를 다시 지구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쏘아보내고, 마침내는 이곳까지 끌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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