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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크의 최중원 Aug 21. 2020

수영

그는 수영을 좋아했다. 날씨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수영을 했다. 소박한 그의 집은 호숫가에 있었고, 문 밖으로 나와 열다섯 발자국을 걸으면 이미 그의 발은 맑은 물속에서 찰랑대고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한 바퀴 원을 그리며 수영하면 25분가량 걸렸다. 컨디션이 좋을 때면 세 바퀴까지 그는 수영을 하며 돌 수 있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일단 호숫물에 몸을 담갔다면 그는 어떻게든 한 바퀴를 돌았다. 


호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깊었고, 호수의 동쪽에서는 작은 천이 끊임없이 호수로 물을 공급했다. 물이 들어오는 곳은 있는데 나가는 곳은 없다는 것을 그는 조금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수위는 늘 일정했다. 흘러들어오는 만큼의 물이 증발되는 것일까? 아니면 욕조처럼 호수 밑바닥 어딘가에 구멍이 나 있어서 물이 흘러내려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외진 호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수영 팬츠를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호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호수에는 그 말고도 다른 누군가들이 있었다. 호숫가에는 오리들이 낮잠을 잤고, 물닭들은 끊임없이 잠수했다 별 다른 소득 없이 올라왔다. 꼬리를 끊임없이 깔딱거리는 할미새도, 부리가 긴 도요새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어떤 새들은 봄에 날아왔다 가을에 날아가고, 어떤 새들은 가을에 날아왔다 봄에 날아갔다. 보송보송한 털들을 가진 새끼 새들은 금방 금방 자랐고,  부모 새와 새끼 새들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자식들을 생각했다.


수영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아래에서 헤엄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도 보았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은 정말 우아했다. 그저 몸을 좌우로 조금씩 비틀면서 그 끝에 있는 꼬리지느러미를 살랑살랑거릴 뿐인데 물을 거스르고 나아갔다. 그에 비해 사람이 헤엄치는 모습은 얼마나 추한지! 팔은 어떤 영법으로 헤엄치든 꼴사납게 휘둘러대야 했고, 그건 다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어떤 수영선수가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아도, 그는 그 모습에서 아무런 우아함도 느끼지 못했다. 



오랫동안 교사로 일했던 그는 은퇴한 지 이제 5년이 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연금으로는 혼자의 삶을 꾸려나가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는 수영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은 만큼 자거나, 혹은 근처의 숲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집 뒤편의 텃밭에서 잡초를 캐고 거름을 주는 일에도 신경을 쏟았다. 


겨울이 오면 그는 근처의 스키장에서 시설관리인으로 일했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스키장이었다. 슬로프는 네 면 밖에 없고, 리프트도 두 개뿐이었다. 시설도, 대여해주는 스키와 스노보드도 모두 낡아있었다. 오는 손님들도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십 년이 넘게 이 스키장을 찾는 단골들이었다. 경사가 심한 슬로프에서 멋진 폼으로 스키를 타며 눈을 가르던 손님들도 이제는 뼈가 부러지면 쉽게 붙지 않는 나이가 됐다며 몸을 사렸다. 숙련자용 슬로프는 그래서 보통 텅 비어 있었다. 대신 몇 년 전부터 스키장에서 제일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레스토랑이었다. 손님들은 반나절 정도 스키를 타고, 오후에는 숙소에 들어와서 좀 쉰 다음에, 이른 저녁부터 레스토랑에 모여서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여기저기서 흥에 겨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하루에 두 개 정도의 맥주잔이 깨졌다.


그는 시설을 청소했다. 눈이 부족할 때면 제설장비를 트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리프트를 정비할 때면 사람들과 함께 기어에 기름칠을 하고 케이블의 장력을 점검했다. 먹을 것을 찾아 스키장으로 내려오는 여우에게 공포탄을 쏴서 겁줘 내쫓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그동안 고마웠네. 우리 스키장은 아무래도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것 같아. 스키장의 지배인이 크리스마스 보너스가 담긴 봉투를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손님이 너무 줄었어. 문을 열 수록 손해야.  그 옆 골짜기에 새로 생긴 큰 스키장 때문이야. 나도 며칠 전에 가봤는데 좋긴 좋더군. 눈도 더 부드럽고. 그러니 어쩌겠나. 


그는 보너스 봉투를 들고 시내에 있는 스포츠 용품 상점에 왔다. 그는 언제나 스키장에서 받은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새 수영복을 샀다. 워낙 수영을 자주 해서 그의 수영복은 늘 1년 만에 해지기 일쑤였다. 그는 이번엔 은색의 수영복을 골랐다. 무슨 재질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 그가 입었던 수영복보다는 광택이 있었다. 상점의 직원은 매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와서 남성 수영복 하나를 사가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도 수영하세요? 이렇게 추운데? 그가 물었다. 조심하세요. 너무 찬 물에서 수영하면 심장마비에 걸리기 쉽다더라고요.




호숫가의 자신의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드는 서쪽 하늘 위로 새들이 날아다녔다. 그는 먼저 집의 난로에 불을 지폈다. 수영할 때 추운 것보다 수영을 하고 뭍으로 올라온 다음에 추운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다음 그는 방금 산 은색의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천천히 꼼꼼하게 준비운동을 했다. 집 안의 공기는 금방 데워졌고, 그 때문인지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 저녁 수영을 포기했다. 그리고 수영복을 입은 채 침대 위로 쓰러졌다.


꿈에서 그는 호수를 수영하고 있었다. 은색의 수영복은 자라서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에게는 팔도, 다리도 없었다. 입으로 들어온 차가운 물이 아가미를 통과해서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헤엄치는 것이 그에게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평생 동안 해온 일인 것처럼 몸에 익은 일이었다. 물고기가 된 그는 은색 매끈한 몸으로 물을 우아하게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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