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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un 29. 2024

"독일에서 엄청 잘 되려나봐요. 진짜로요"

독일라이프 4화. 고난이 축복으로 느껴질 때

이틀만 지나면 7월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믿기지 않는다. 눈 깜빡하니 일년의 반이 다 갔고 독일에 온 지도 한달이 됐다.


아파트먼트 화장실 변기 문제는 입주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경과는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에 올리며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내 안에서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다. 억지로,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한 거다. 몸과 마음이 가볍고 웃음마저 나온다.


생각해보면 과거 어떤 시기엔 누군가의 구원이 간절했음에도 오로지 혼자 감내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답이었을 때. 아무도 나를 적극적으로 구해줄 수 없었던 때.


이후로도 내 삶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부당한 문제 앞에 내가 해결하고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도록 했다. 한사람의 간절함은 주변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국 소용없는 일이 될 뿐이었다.


그때 겪었던 고통과 체념에 비하면 지금은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를 전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며, 시간은 걸릴지라도 차근차근 잘 해결되고 있다.  


하우스마이스터는 내 방과 최대한 가까운 다른 호실 열쇠를 건네며 깔끔한 화장실을 제공해줬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적었다시피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만난 수리공 세 명도 모두 최선을 다했다.


유학원 역시 언어장벽이 있는 나를 대신해 매일 베를린주택공사, 숙소관리실, 수리회사, 배관업체 등과 소통하고 연락하며 중간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사실 나는 이 상황 자체가 참 감사하다. 물론 애초부터 문제가 없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앞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위해 다함께 움직여주고 있지 않나.


자기 일이 아니라고 누구 한명 얼렁뚱땅 대충 넘어간다던가 서로 자기네 탓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문제가 된 원인부터 기꺼이 싹 다 제대로 고치려고 한다.


"근데 제가 지금까지 보니까... 자기가 뭐 실수하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라 이쪽의 어떤 문제 때문에 처음에 오자마자부터 크게 고생한 사람들이 그 뒤로 잘 풀려요, 진짜로. 모모씨가 독일에서 엄청 잘 되려나봐요. 진심이에요"


유학원 대표님께서 좀 아까 통화하며 내게 하신 말씀이다.


다음주부터 화장실 대공사가 시작된다. 대표님은 입주날부터 공사 기간 동안 내가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베를린주택공사 측에 월세 감면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얘기하려고 했는데 먼저 나서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물품 안전을 위해 공사 기간 동안 화장실 외에 거실과 침실, 부엌이 있는 집 안쪽을 잠글 수 있는 중문 열쇠도 따로 받았다.


이 열쇠가 어쩐지 행운의 열쇠처럼 보였다.


7월 1일부터는 드디어 어학원을 다닌다. 예전의 나였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차분히 시작하고 싶었는데 왜 계획대로 안 따라주는 거야'라며 불평불만했을 텐데. 이렇게 잘 성장하고 성숙해진 내가 좋다.


완벽한 때란 없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다짐한 일과를 해내는 것, 행복을 미루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인생이 너무 재밌다. 얼마나 큰 사람이 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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