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라이프 3화. 베를린에도 가져온 인생의 저울
서른두살. 미혼 여성. 독일행.
나는 잃을 것이 없어서 용감할 수 있었다. 이 말은 즉, 가진 게 없어서 사무치게 불안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생을 자기확신과 자기파괴를 오갔다. 한쪽 추에는 불안, 치부, 강박이 묵직하게 자리했다. 반대편 추에는 극복, 감사, 긍정이 힘을 내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인생은 나름 살아볼 만한 것일 테지만 나에겐 많은 순간이 극복의 연속이었다. 시련을 이겨내려면 의도적으로 더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중학생 때부터 니체의 철학 사상 중 하나인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아모르파티)'에 매료된 걸지도 모르겠다.
베를린에 온 지도 벌써 2주가 넘었다. 물론 니체의 고향인 독일에 와있다고 해서 단번에 사람이 변하진 않는다. 여전히 매 순간 내 안에서는 자기확신과 자기파괴가 한치 양보 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늘 그래왔듯 어떤 시간은 행복에 겨워했다가 문득 씁쓸한 허무에 젖는다.
다만 그럼에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스스로를 질식시키려 할 때 이제는 제법 빨리 박차고 나오게 됐달까. 나 자신을 힘든 감정에 끝까지 몰아넣지 않도록 독일어를 공부하거나 미술관을 가고 또 건강한 식재료를 하나둘 사와 맛있는 요리를 해먹는다.
무엇보다 '그래도 나 지금 베를린에 있잖아'라는 생각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결코 원하는 인생이 아니었대도 이것 하나만큼은 꿈을 이루고 있는 거니까. 그만큼 이 시간을 잘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도 크다. 없애버리고 싶은 치부 역시 불시에 고개를 내밀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저울의 반대쪽 녀석들이 이길 거라고 믿는다.